Doctrine, Narrative, and the Identity-Formation of the Christian Disciple
교리, 내러티브,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형성

“Oneself as Ano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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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 내러티브,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형성

네번째 박사 과정 공부 나눔에서는 저의 중요한 관심사인 기독교 교리 교육을 통해서 어떻게 정체성 형성에 기여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얘기를 펼쳐가기 위해서 특별히 중요한 개념들이 두가지 있는데요. 첫번째로는 펜실베니아 대학교(the University of Pennsylvania)의 파멜라 그로스만(Pamela Grossman) 교수가 창안한 “지향”(orientation)이라는 개념, 그리고 두번째로는 해석학자인 폴 리쾨르(Paul Ricoeur)의 내러티브 정체성(narrative identity) 개념입니다. 저는 이 두 개념을 교리에 대한 저의 질문과 연결시키면서 교리를 일종의 내러티브로 이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걸 통해서 교리가 정체성 형성에 영향을 끼칠 수 있으며,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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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 내러티브,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형성”

Theological Education, and Practical Theology
신학교육, 그리고 실천 신학

“Theologia: The Fragmentation and Unity of Theological Edu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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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교육, 그리고 실천 신학

박사 공부 나눔 세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첫번째 시간에 했던 얘기의 연장선 상에서 얘기를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첫번째 시간에는 가다머가 어떻게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천적 지혜(phronesis) 개념을 해석학적인 개념으로 발전시키면서 실천 철학의 토대를 놓았고, 그것이 어떻게 실천 신학으로 연결되었는지에 대해서 살펴 보았습니다. 오늘은 좀 더 실제적인 차원에서, 지난 세기를 걸쳐서 계속해서 지속되어 왔던 신학교 교육의 문제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신학교 교육이 중요한 까닭은 신학이 어떤 학문인지에 대한 선전제가 신학교 교육 안에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학문 분야이든지, 그 학문에서 다루는 지식의 본질이 무엇이며, 그러한 지식을 어떻게 가르치고 전달하며 새로 생산해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항상 그러한 지식을 가르치는 교육 기관의 철학적 선전제 안에 포함되어 있기 마련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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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교육, 그리고 실천 신학”

Balthasar, Jesus, and Israel
발타자르, 예수, 그리고 이스라엘

“Theo-Drama, vol. 3: Theological Dramatic The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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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타자르, 예수, 그리고 이스라엘

한스 우르 폰 발타자르(Hans Urs von Balthasar)는 스위스 출신으로 예수회에 속한 카톨릭 신학자입니다(이후에는 예수회를 탈퇴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보스턴 칼리지에서 Th.M.(Master of Theology: 목회학 석사 학위M.Div 이후에 세부 분야에 대한 공부를 깊이 하기 위해서 밟는 석사 후 과정)을 하면서 발타자르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렇게 가지게 된 관심은 박사를 하고 있는 지금까지 연결되어오고 있습니다. 오늘 서평에서는 발타자르의 예수와 이스라엘의 관계에 대한 신학적 이해를 통해서 어떻게 그러한 이해가 인종 차별적 신학으로 가는 길을 막아 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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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타자르, 예수, 그리고 이스라엘”

The Idea of the Good in Platonic-Aristotelian Philosophy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의 선 개념

“The Idea of the Good in Platonic-Aristotelian Philoso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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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다섯 번에 걸쳐서 제가 지금까지 공부한 내용들을 간단하게나마 정리해서 나누고자합니다. 우선 1) 첫번째로 제가 공부하는 실천신학이라는 분야의 근간을 이루는 실천 철학, 특별히 철학자 한스 게오르그 가다머(Hans-Georg Gadamer)의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의 선(the Good) 개념 (The Idea of the Good in Platonic-Aristotelian Philosophy) 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서 세워진 실천 철학 개념이 어떻게 실천 신학으로 연결되는지에 대해서 소개할 것이고, 2) 다음 서평에서는 가톨릭 신학자 한스 우르 폰 발타자르(Hans Urs von Balthasar)가 이해하는 예수의 유대인됨과 소명이 어떻게 구약의 특수성과 신약의 보편성을 연결짓는 통일성을 담보하는지, 그리고 그러한 이해가 어떻게 인종주의를 넘어서도록 해주는 실마리를 제공하는지에 대해서 다룰 것입니다. 3) 세번째 서평에서는 실천 신학이 어떻게 신학교 교육의 현 패러다임에 도전을 주고 있는지를 에드워드 팔리(Edward Farley)의 테올로기아(theologia)를 중심으로 다룰 것이고, 4) 네번째에는 기독교 교리를 내러티브로 이해하게 될 때 교리가 정체성 형성을 위한 교육에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다룰 계획이며, 5) 마지막으로 다섯번째 시간에는 앞으로 저의 공부 방향에 대해서 간략하게 나누고 이 시리즈를 마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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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의 선 개념”

Rejoicing in Lament
비탄함 속에서 즐거워하기

“Rejoicing in La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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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드 빌링스(Todd Billings)의 비탄함 속에서 즐거워하기(Rejoicing in Lament)는 신학자이자 불치암 환자의 개인적인 신앙의 여정을 담은 묵상 기록인 동시에, 신학적 성찰이 현실을 마주하는데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이 책은 서평자인 제가 파악하기에 특별히 다음의 세가지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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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탄함 속에서 즐거워하기”

Answer to Job
욥에 답하다.

“Answer to J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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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불의한 하나님을 향한 항변

칼 융의 저서 욥에 답하다(Answer to Job)는 욥기에 나와 있지 않은 하나님의 욥의 질문에 대한 답이라기 보다는, 욥의 입장을 공감하려고 하는 현대인, 즉 융이 욥의 세 친구들이 하지 못했던 욥에 대한 변호를 대신 맡아서 하나님을 향하여 항변하는 책입니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욥기에 대한 책이라기에는 융이 유대-기독교 전통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생각을 종합적으로 담고 있기에 오히려 융의 종합적 신학 저술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이 서평에서는 융의 욥에 대한 변호/하나님을 향한 공격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할 것이며, 그를 통해서 서구의 하나님 상(God-image) 안에 선(good)만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악(evil)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라고 하는 이원론적인 모습이 있으며, 원래의 일신론적인(monotheistic) 하나님 상은 초대교부들의 사상에서 볼 수 있듯이 선과 악 모두가 하나님의 주권 하에 있다는 생각의 흐름이 융의 욥기 읽기를 통해서 회복할 수 있는 부분이라는 얘기까지 해 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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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에 답하다.”

The Labor of Job
욥의 노동

“The Labor of J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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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네그리의 욥의 노동(The Labor of Job)은 굉장히 흥미진진한 텍스트입니다. 일단 네그리는 신을 믿지 않는 유물론자이고요. 맑시스트 정치 철학자입니다. 거기에 욥의 노동을 네그리가 썼던 때, 정확히 말하면 네그리가 욥기를 펼쳐 들고 읽기 시작한 때는 그가 감옥에 있던 1982년이라고 하네요. 과연 유물론적인 맑시스트 정치철학자인 그가 인간의 고통을 다루는 욥기를 왜 펼쳐들게 되었을까? 라는 질문이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맴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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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의 노동”

On Job
욥에 관하여

“On J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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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한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C.S. Lewis는 자신의 책 순전한 기독교에서 무신론자 시절의 자신의 무신론에 대한 방어 논리에 대해서 회상합니다. 무신론자 루이스의 논리에 따르면, 이 세상과 우주가 돌아가는 모습에는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를 전혀 찾을 수가 없습니다. 만약 신이 전지전능하고 선하다면, 왜 우주는 그토록 냉혈한 같은, 악이 창궐하는 모습을 보여주는가? 라는 것이 루이스의 질문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세상은 불공평하며, 악은 넘쳐 흐릅니다. 악인은 융성하며, 의인은 망합니다. 이런 세상 속에서 사랑과 정의라고 하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가능할까요? 더 나아가서, 세상이 그런 곳이라면, 과연 이런 세상 속에서 사랑과 정의의 하나님을 말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아울러, 하나님을 말하는 학문인 신학이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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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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