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켈러의 내가 만든 신(Counterfeit Gods)은 우상(idol)과 우상 숭배(idolatry)에 관한 책입니다. 우상과 우상 숭배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현대인들과는 별로 상관 없는 것, 그저 고대인들의 미신적 종교관습에서 금이나 은, 동 같은 금속으로 형상을 만들어서 세워놓고 그 앞에 절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팀 켈러는 현대인들 또한 그 모양만 다를 뿐, 똑 같은 우상을 가지고 있고, 우상 숭배를 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 책은 우상을 가짜 신(counterfeit gods)이라고 부르면서 과연 어떻게 고대인들의 미신적인 우상 숭배가 현대인들에 삶 속에 속속들이 똑같은 모습으로 파고들었는지를 적나라하게 파헤칩니다.
켈러의 정의에 따르면, 가짜 신, 즉 우상이란 “우리의 삶에 아주 중심적이고 본질적이어서 만약 그것을 잃게 되었을 때 우리의 삶 자체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을 말합니다. 켈러에 따르면, 우상은 본질적으로는 선하고 좋은 것이지만, 거기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지나친 나머지 우리가 인생의 의미 자체를 거기에 걸게 될 때 우상으로 변하게 됩니다. 따라서 가족이나 자녀도 우상이 될 수 있고, 직업이나 돈을 버는 것, 성취 그 자체, 다른 이들의 칭송, 혹은 다른 이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에 대한 생각, 수치심, 사회적 지위도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로맨틱한 이성과의 관계도, 동료들의 나에 대한 인정도, 내가 얼마나 경쟁력을 가진 사람인지도, 안정적이고 편안한 환경도, 아름다움도, 혹은 내 명석함도, 위대한 정치적 혹은 사회적 대의도, 우리가 얼마나 도덕적인 사람인지도, 심지어 종교적 사역에서의 성공을 위한 바램도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xviii). 켈러가 책 전체를 통해서 계속해서 반복하는 한 구절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우상은 그것을 섬기는 사람, 즉 그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을 그 우상의 노예로 만든다’(all idolatries enslave.) 는 것입니다. 즉 무언가가 사람의 마음 속에 깊은 갈망으로 자리잡아서 그 사람의 모든 동기와 삶의 방식을 지배하게 된다는 것이 바로 그 사람의 삶에서 그 무언가가 우상이 되었다는 말이라는 뜻입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비록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무언가를 소유하게 된다고 해도, 원래 그것을 소유하기 위한 추진력이 되었던 욕망은 채워지지 않고 남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깨달음은 역사를 통해서 여러 번 참으로 밝혀진 바 있습니다. 불교의 경우 이러한 깨달음에 기초하여 (아주 단순화시켜서 말하자면) 모든 욕구와 그 추구에서 멀어지는 것을 중심적 가르침으로 삼고 있기도 하지요. 적어도 인간에 대한 이런 관찰에 있어서 불교와 기독교는 동의하는 면이 많습니다. 이야기를 약간 잠자는 숲속의 공주라는 동화와 비슷하게 바꿔보면, 악한 마녀의 꼬임에 넘어가 영원한 잠에 빠져든 공주, 자신이 사랑하고 가장 원하는 공주를 위해서 왕자는 그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악한 마녀를 물리치고 난 뒤, 결국 자신의 궁극적 소원이자 갈망의 대상이었던 공주와 결혼하게 되고, 그 뒤로 행복하게 살았다는 결말이 펼쳐져야 하지만, 불교도, 기독교도, 결국 사람이 가장 원하고 바라는 것을 가지게 된다고 해도,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 후로는 아무 문제 없이 행복하게 잘 살았대요’는 실제적인 인간의 삶에서는 없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섬기고 사랑하며 소유하고자 하는 욕구의 대상이 바뀌기 전에는 말입니다. 그리고 켈러가 책 전체를 통해서 독자들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결국 어떻게 저 반복되는 명제가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삶 속에서 구체적이고도 명증적으로 나타나는지에 관한 것과, 비워내라라고 말하는 불교의 가르침과는 달리, 기독교의 가르침은 하나님의 사랑하심으로 깊이 채워짐을 통해서 하나님을 인생의 우선 순위로 사랑하게 되는 것, 즉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어떻게 그러한 문제들에 답이 되어주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애나(Anna)와 샐리(Sally), 아브라함과 야곱,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켈러가 앞의 이런 주장들을 독자들에게 설득하는 방식이 효과적인 까닭은, 그가 자신의 사역을 통해서 만났던 사람들이 보여주었던 우상 숭배의 문제들을 예로 들면서, 그에 비견되는 우상 숭배와 그런 문제를 가지고 있었던 성경의 인물들을 비교하면서 이야기를 풀어가기 때문입니다. (물론 성경의 인물들을 제외하고 켈러의 예시로 등장하는 사람들의 이름은 가명이며, 그들의 이야기가 책에 등장하는 것에 관해서 미리 협의가 되었을 것임에는 별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전체 7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이런 논증 방식으로 진행되기에 성경의 이야기가 우리의 이야기이며, 우리의 이야기가 성경의 이야기라는 것을 아주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전체 7장의 얘기를 여기서 다 다루기에는 공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첫 두 장에 나오는 네 명의 사람들, 즉 현존 인물인 애나와 샐리, 그리고 성경의 인물들인 아브라함과 야곱에 관해서만 얘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장에서 켈러는 애나라는, 자녀를 가지는 것이 일생일대의 소원이었던 한 어머니, 자신의 사역을 통해서 만났던 이 인물을 등장시킵니다. 켈러에 따르면, 결국 그녀의 소원대로 그녀에게는 자녀들이 2명이나 생기는 축복이 주어집니다. 하지만 자녀를 너무나 원했던 나머지, 그녀에게는 그렇게 주어진 자녀들을 완벽하게 키워내고 싶다는 강력한 욕구가 작동하기 시작했고, 그래서 그 결과 애나는 자녀들의 삶을 완벽하게 컨트롤하고자 합니다. 자녀들이 철저하게 자기가 그린 그림에 따라서 성장해주기를 바라며, 그 프로그램에 따라서 자녀들을 조종하고 통제했던 것이죠. 그 결과 자녀들 중 한 명은 감정적인 문제가 생겼고, 나머지 한 명은 분노 조절 통제 장애에 걸리게 되고 맙니다. 한 사람의 인생 최대의 소원과 그를 이루고자 하는 욕구가 결국 어떻게 우상 숭배가 되며, 안타까운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2장에서 켈러는 샐리라는 탁월한 미모를 가진, 역시 자신의 사역을 통해서 만났던 여성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샐리는 그 아름다운 미모 덕에 어렸을 적부터 사랑을 고백하는 남자들이 끊이지 않았던 여성이었습니다. 그 덕에 자신의 출중한 외모를 가지고 수많은 남자들을 자신이 원하는대로 조종하는 법도 배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샐리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남자를 사귀는 것에 두게 되었고, 남자를 사귀지 않고 있는 순간, 홀로 된 순간을 견디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남자들이 자신을 높여주고 “여신”처럼 다루어주는 관계를 즐기는 것에 빠진 나머지 그런 관계를 가지는 것에 거의 중독되다시피 된 겁니다. 즉 스스로가 가치 있는 존재라는 느낌을 오직 자신을 아름다고 사랑할만하다고 말하는 남자의 존재 여부에서 찾게 된 것입니다. 켈러는 말하기를, 그 결과 샐리는 인생의 어떤 때이든지 홀로 남게 되는 것을 가장 두려워 하게 되었고, 때로는 사귀는 남자가 자신을 때리고 폭력적으로 다룬다고 하더라도 그런 관계의 늪에서 빠져나오기가 어렵게 되어 버렸다고 말합니다. 로맨틱한 이성 관계가 어떻게 한 사람의 일생에서 우상으로 작용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하겠습니다.
켈러가 애나와 샐리라는 인물을 통해서 보여주는 것은 곧 자신의 서문에서 밝힌 우상의 정의가 어떻게 구체적인 현대인들의 삶에서 그 폐해를 드러내는지 입니다. 그리고 켈러는 이 모든 우상과 그 숭배에 대한 치유는 하나님의 온전하고도 절대적인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드러난 복음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즉 애나의 경우 자녀들을 향한 광적인 집착은 결국 아브라함이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포기하려고 했듯이 하나님께서 아들 그리스도 예수를 세상을 위해서(즉 애나를 위해서) 포기하고자 했던 그 사랑을 알게 될 때, 자녀에 대한 애나의 사랑이 올바른 질서를 잡게 될 수 있다고 말하며, 샐리의 경우 남자들의 인정을 통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마음은 마치 야곱의 아내인 레아가 자식을 낳음으로써 야곱의 인정을 구했던 것과 비슷하며, 이렇게 이성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욕구는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하심을 먼저 깊이 누리게 될 때에야 누그러 들게 되고, 그를 통해서 남자들과의 관계가 질서를 잡아가게 될 거라고 말합니다. 곧 남자는 남자일 뿐이며 (혹은 여자는 여자일 뿐이며), 인생 전체를 지배하는 의미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이 책이 하는 얘기는 서평자가 이 짧은 서평에 담아낸 것보다 훨씬 더 깊고 풍성합니다. 그래서 혹시나마 이 서평을 통해서 이 책에 대해서 흥미를 가지게 되신 분이 있으시다면 꼭 책을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복음의 깊은 의미와 함께 우리 삶에 파고든 우상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여러분 각자의 삶에서도 보게 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