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의 메아리

음악적 성경 읽기(musical reading of the Scripture)에 대해서 들어본 일이 있으신가요? 저는 처음 들어봤습니다. 음악적 성경 읽기는, 이를테면 성경이라는 대서사시를 장엄한 하나의 곡으로 바라보고, 창세기를 서곡(overture)으로, 그리고 요한계시록을 피날레(finale)로 생각합니다. 마치 하나의 곡이 비슷한 주제와 리듬의 끊임없는 변주를 이어가듯이, 또한 절정(crescendo)이 있고 그 절정에 도달하는 과정이 있듯이, 성경 또한 그런 주제들의 변주가 마치 하나의 곡처럼 계속해서 이루어진다고 봅니다. 딴은 그럴듯한 생각이며, 그럴듯한 읽기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주제들이 그런 변주를 끊임없이 만들어 낼까요. 이 책은 성경에는 피의 희생 제사를 동반하는, 노예 신분으로부터의 속량(redemption), 대속물, 해방, 하나님과의 화해, 위대한 승리, 믿음을 통한 결백의 증명, 하나님과의 연합, 양자됨, 제사장 신분, 유월절, 세례, 왕국과 같은 주제들이 등장하는데, 그 주제들은 모두 계속적으로 약간의 변형을 통해서 다양하게 성경 전체에서 울려퍼진다는 점을 성경 전체를 살펴보면서 보여주려고 합니다. 특별히 이 책의 핵심적 주장은 성경의 수많은 책들 중에서도 특히 출애굽기가 그 모든 주제들의 통전적 시초가 된다는 것입니다. 즉 출애굽기 안에 앞에서 언급한 중요한 성경의 주제들이 모두 등장하며, 창세기를 포함해서 다른 모든 성경의 책들이 이런 주제들의 끊임없는 변주인 동시에, 더 나아가서 우리 인생 또한 이런 주제들이 끊임없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일들의 반복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책은 어떻게 이 주장이 합리적으로 증명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냥 성경 전체를 훓으면서 자신들이 주장하는 바를 보여주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보여주기(showing)가 바로 이 책이 스스로의 주장을 펼치는 방식입니다.

이런 주장을 논증하는 대신 보여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이 책은 우리가 무언가를 이해할 때 은유(metaphor)가 가지는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말하자면, 이 책이 성경을 읽기 위해서 채택하는 은유는 음악입니다. 하지만 다른 은유를 통해서 성경을 읽는 일도 가능하죠. 이를테면, 전투라는 은유를 통해서 성경을 읽어낼 수도 있습니다. 이걸 전투적 읽기라고 불러보죠. 성경에는 전투 장면이 가득합니다. 단지 물리적 전투만이 아니라, 영적 전투도 있고요.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들과 악한 세력과의 전투는 우리네 인생이 펼쳐지는 장면 장면을 캡쳐하기에 좋은 은유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전투 은유에는 약점이 있습니다. 모든 걸 다 우리편과 저쪽편, 좋은 놈과 나쁜 놈으로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게 되는 성향이 생긴다는 겁니다. 이걸 극단적으로 밀어붙여서 성경을 읽는 집단이 있지요. 바로 극우적이거나 극좌적인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입니다. 태극기 부대나 극단적 공산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상대방을 절대악으로 규정하는 경향이 있고, 오직 자신들이 선하고 나머지는 모두 악하다고 보려는 유혹을 많이 받습니다. 회색 지대, 애매모호한 현장이 우리 삶에 항상 존재한다는걸 거부하고, 모든걸 흑백으로 색칠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쩌면 이런 전투 은유를 통해서 성경을 읽어내는 걸 가장 선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음악적 읽기가 전투적(?) 읽기에 비해서 가지고 있는 비교 우위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책은 세가지를 제시합니다. 첫번째로 음악적 읽기는 성경이 가진 긴장과 해소(tension and resolution)라는 구조를 잘 드러낼 수 있다는 겁니다. 어떤 때 우리는 성경의 각 권이 대치 관계에 있다는걸 발견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여호수아의 하나님이 정복자의 하나님인 반면, 복음서의 예수 그리스도는 정복당하는 하나님이시니까요. 그렇다면 이런 대립 구조를 성경은 어떻게 처리할까요. 책은 악을 정복하시는 하나님이나 선으로 악을 극복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성경이 끊임없이 변주하면서 궁극적으로 세상에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으로 나아간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음악적 은유는 성경을 이렇게 읽도록 큰 도움을 줍니다. 두번째로 음악적 읽기는 멜로디와 하모니라는 은유를 통해서 성경 읽기를 도와줍니다. 성경의 스토리 라인은 다양하게 펼쳐집니다. 물론 그 절정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하심이 있지요. 하지만 그 절정에 닿기 위해서 성경은 창세기부터 시작해서 요한 계시록까지 엄청나게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그리고 그 다양한 이야기는 하나의 멜로디로 구성되어 있지 않고, 마치 여러 멜로디가 하나로 어우러져서 울려 퍼지는 하모니같습니다. 성경을 읽는다는 말은 이런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하심이 그냥 명제적으로 “예수께서 구속자 되셨다”고 선언하는 방식으로 나타나는 대신, 하나님의 백성이 온갖 고난과 고통, 하나님 앞에서의 부르짖음과 왕국의 건설, 적과의 전투, 욕망의 대립과 같은 인간 드라마를 통해서 점점 더 그 절정에 가까이 다가가는지, 마치 음악을 듣듯이 감상한다는 뜻입니다. 마지막 세번째로 음악적 읽기는 리듬과 운율로 성경을 바라보게 해줍니다. 운율(meter)이란, 한 곡에 깔려 있는 시간적 구조를 가리킵니다. 또한 리듬이란, 우리가 곡에서 실제로 듣는 소리의 구조를 가리킵니다. 예를 들면, 붐차차-붐차 같은 소리의 구조가 리듬입니다. 리듬은 운율을 통해서 표현됩니다. 붐차차-붐차라는 리듬은 그 이면에 둘-셋-넷-둘-셋 같은 시간적 구조를 통해서만 드러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리듬은 운율을 마치 서퍼가 파도를 타듯이 탄다고 말합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에도 시간적 구조와 음악적 구조가 깔려 있습니다. 예를 들면, 성경은 안식일, 유월절, 속죄일, 오순절 등의 절기로 시간을 이해하며, 그런 이해는 단지 성경 시대의 사람들에게만 해당되지 않고,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따라서 이런 시간의 리듬의 되풀이될 때마다 우리는 성경의 시간이 우리의 시간이 되며, 우리의 시간이 성경의 시간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책은 이렇게 음악이라는 은유를 통해서 어떻게 출애굽기의 여러 주제들이 긴장과 해소, 멜로디와 하모니, 그리고 리듬과 운율이라는 장치 안에서 성경 전체에 울려 퍼져 나가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런 작업은 대체로 모세를 기점으로 이루어집니다. 말하자면, 모세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예표가 되는지, 아브라함은 어떻게 모세가 살았던 삶을 이미 예표했는지, 또한 야곱, 요셉, 여호수아, 다윗, 룻 등의 성경 인물들의 삶에서 어떻게 이렇게 다양한 출애굽의 주제들이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하지만 흥미롭게도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의 삶의 과정과 상당히 유사하면서도 다르게 표현되는지를 성경의 각 책을 읽어가면서 보여줍니다.

전체적으로 저는 책이 상당히 아름답다고 느꼈습니다. 음악은 아름답죠. 성경이 음악적으로 읽힐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걸 근거를 대면서 논증하는 대신, 실제로 보여주는 방식이 저로 하여금 책이 아름답다고 느끼게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말은 제가 책의 주장에 어느 정도 설득당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아마 저는 이 책을 참고 서적으로 삼고 두고두고 다시 살펴보면서 계속해서 저의 성경 읽기를 위해서 참고할 것 같습니다. 물론 책의 주장에는 한계도 있습니다. 책 스스로가 애초에 책이 보여주는 것들이 지나치게 짜맞추려는 시도처럼 보일 수 있다는 얘기를 하는데요. 실제로 그렇게 볼 수 있는 면도 존재합니다. 추가적으로, 책은 성경을 음악적으로 읽어낸다는 주제에 집중해서 책의 구조 또한 한 곡의 악장인 듯이, 1, 2, 3, 4악장으로 표현하는데요. 이런 악장들의 구조 자체에 대한 근거를 전혀 설명하지 않아서 독자로서 읽으면서 좀 의문이 들었습니다. 물론 책이 애초에 근거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보여주는 식으로 펼쳐진다고 예고했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음악적 읽기에 대한 부분을 설명하면서 책의 구조가 왜 4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왜 각 악장이 저자들의 의도를 잘 반영하는지도 설명했었다면 더 설득력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평을 쓰면서 저자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어떻게 “보여주는”지를 좀 다뤄볼까 하다가, 그건 실제 책을 읽는 독자들이 그 아름다움을 맛보실 수 있게 남겨두자고 생각하고, 이 서평에서는 책이 말하는 예비적 작업에 대해서, 그리고 서평자로서 제가 생각한 책의 한계나 잠재적 약점에 대해서만 다뤘습니다. 하지만 이미 밝혔듯이, 저는 계속해서 이 책을 곁에 두고 저의 성경 읽기를 위해서 참고할 것 같고요. 이 책이 말하는 음악적 읽기가 어떻게 더 심화되고 확장될 수 있는지 계속해서 고민할 것 같습니다. 정말 좋은 책입니다. 성경을 어떻게 해야 우리 삶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로 읽어낼 수 있는지 고민하시는 분들 모두에게 추천합니다.

서평 쓰는 남자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