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켈러(Timothy J. Keller, 1950-)가 요즘 화제입니다. 2008년부터 지금까지 20여 권의 책을 출간했고 뉴욕 타임스 베스트 셀러 작가의 반열에도 올랐던 켈러는, 2018년 3월에는 방한해서 한국의 독자들과 첫 만남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켈러는 작가이기 전에 목회자이며 설교자입니다. 그는 30년 전인 1989년 기독교 복음의 불모지라고 여겨지는 뉴욕 맨하탄에 교회를 개척해서 오늘날까지 상당한 열매를 맺었습니다. 따라서 팀 켈러의 사역 내용과 그 이면에 깔린 그의 신학과 복음∙도시∙현대 문화에 관한 이해가 한국의 많은 신학생과 목회자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켈러의 저술에 나타난 신학과 사역에 관한 중요한 통찰들을 살펴보고 그 내용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한국교회의 상황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지를 다루어보려고 합니다.(주) (주: 필자는 팀 켈러의 복음 이해, 인간 이해, 현대 문화와 상황에 대한 이해와 그 시사점들이 어떻게 신앙 성장과 기독교 사역에 도움이 될지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책인 『팀 켈러의 신학적 비전: 연결과 소통』(가제)을 출간할 계획이니, 그 책도 참고해 주십시오.)
앞으로 필자는 켈러의 저서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각 책이 우리의 삶과 사역에 주는 시사점을 짚어보고자 합니다. 그러나 이 첫 번째 글에서는, 책 소개로 바로 들어가기 보다는, 켈러의 사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그에게 영향을 끼친 세 사람을 살펴보겠습니다. 한 인물이 만들어지는 데 그가 ‘스승’으로 삼은 인물의 영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켈러가 영향을 받았다고 자주 언급하는 인물 중에서 세 사람, 즉, 에드먼드 클라우니(Edmund P. Clowney, 1917-2005), 리처드 러블레이스(Richard F. Lovelace, 1930-), 그리고 하비 콘(Harvie M. Conn, 1933-1999)을 선택해 보았습니다. 켈러 자신은 이 세 인물에게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고 명시적으로 언급한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필자는 켈러 사상의 궤적을 살펴보는 데는 이 인물들이 특별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켈러는 목회자로서는 드물게 학자의 면모 또한 갖춘 인물이며 엄청난 독서량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에게 영향을 준 인물들을 모두 언급하려면 아마도 수십 페이지를 넘겨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이 글에서는 이 인물들 자체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켈러가 그들에게 받은 영향이 어떤 것이었는지에 초점을 맞추려고 합니다.
에드먼드 클라우니는 미국 필라델피아의 웨스트민스터 신학교(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의 총장과 실천신학 교수로 일했던 인물인데, 켈러의 복음 이해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켈러는 그의 책 『탕부 하나님』(The Prodigal God) 서문에서, 자신이 청년 시절 클라우니의 탕자의 비유(눅 15:1-3, 11-32)에 관한 설교를 듣고 기독교 복음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이 설교가 켈러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는 그의 대표작 『탕부 하나님』또한 같은 본문을 다루고 있다는 점만 봐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 비유에 나오는 맏아들과 둘째 아들이 현대인들이 하나님과 관계 맺을 때 전형적으로 취하는 태도를 대표한다는 켈러의 해석틀(interpretive grid)은 클라우니의 설교를 들으면서 켈러 안에서 시작되었다고 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틀은 이후 성경을 쉽게 풀어낸 책, 『당신을 위한 로마서』(Romans for You)와 『당신을 위한 갈라디아서』(Galatians for You)에서도 켈러가 성경을 읽는 틀로 나타납니다. 복음에 대한 이해는 그리스도인의 삶과 사역의 기초가 됩니다. 켈러는 그의 사역 바이블이라고 할 수 있는 『센터 처치』(Center Church)에서도 자신의 사역에 원동력을 제공해 준 세 가지 축 중 복음이 가장 중요한 축이라고 고백하며, 자신이 이해하고 있는 복음을 명제적인 방식으로 상당히 자세하게 풀어냅니다(Part 1).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내가 이해하는 복음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던져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리처드 러블레이스는 미국 교회사를 전공한 역사 신학자로서, 켈러의 고든-콘웰 신학교(Gordon-Conwell Theological Seminary) 시절 스승입니다. 켈러는 러블레이스가 가르치는 “조나단 에드워즈의 신학”이라는 수업을 들으면서 에드워즈의 『신앙 정서론』(Religious Affections)을 접하게 되었고, 에드워즈에게서 처음으로, 이후 자신의 인간 이해의 핵심이 될 마음(the heart)에 대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음을 차지하고 있는 정서(affection)에 대해 듣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비록 러블레이스 교수로부터 정서(affection)가 감정(emotion)이 아니라는 말을 수차례 들었지만, 그리고 에드워즈의 『신앙 정서론』을 무려 5번이나 반복해서 읽었지만, 여전히 켈러는 정서와 감정을 구분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물론 이후 여러 계기를 통해서 켈러는 그 둘의 차이를 구분하게 되며, 켈러의 설교와 상담, 교육은 모두 바뀌게 됩니다. 중요한 점은, 켈러에게는 ‘인간이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변화를 일으키는 소통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이 있었고, 그에 대한 나름의 답을 찾아나가는 여정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있습니까? 그 답을 발견하기 위해 추구해 나감으로써 신앙 성장에 대한 좀더 명료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비 콘은 선교사로 한국에도 와서 총회신학교에서 교수로 일했는데(1960-1972) 한국식 이름은 ‘간하배’입니다. 콘은 켈러가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목회학 박사 과정에서 공부하던 시기에 그의 논문 지도 교수였으며, 켈러에게 도시 사역과 상황화(contextualization)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인물입니다. 실제로 앞에서 언급한 『센터 처치』(Center Church)에서 켈러는 자신의 상황화에 대한 관점과 지식은 거의 모두가 콘 교수에게서 배운 것이라고 밝힙니다. 필자는 켈러를 다른 보수적인 목회자들과 명백하게 구별되게 하며, 그가 개척한 뉴욕 맨하탄의 리디머 교회 사역이 열매를 맺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상황화의 필요성과 긴급성에 대한 켈러의 인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 진보적 신학에서 상황화를 강조하였기 때문에 보수 교회의 목회자들은 ‘상황’이라는 말만 들어도 경계하는 경향이 있지만, 켈러는 건전한 상황화는 항상 필요하며 복음은 언제나 상황에 알맞은 모양을 가지게 되었을 때에만 진정으로 소통하며 도전을 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켈러가 주는 도전은 ‘우리는 과연 복음을 우리가 섬기는, 문화를 입고 사는 사람들이 알아듣고 이해할 만한 방식으로 소통하고 있는가?’입니다. 켈러는 그저 요즘 유행하는 것들에 민감해지라거나, 설교에 유행어를 한두 마디 섞어보라는 뜻으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던지는 질문은, ‘우리가 과연 현대 문화가 가진 근본 구조를 꿰뚫어보고 있는가’, 그리고 ‘복음 메세지를 소통 가능하게, 그러나 본질을 살리면서 전하고, 청중에게 복음의 도전을 날것 그대로 제시할 수 있을 정도로 문화를 이해하고 있는가’입니다.
이외에도 글의 분량 제한 때문에 다루지 못하지만, 켈러가 자신의 삶과 사역에서 정말 중요한 영향을 끼친 인물들로 언급하는 사람들은 존 스토트 (John Stott), 마틴 로이드 존스(David Martin Lloyd-Jones), 씨 에스 루이스(C.S. Lewis),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r)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는 누군가를 떠올리며, “그 사람을 넣었어야지”라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들로부터 켈러가 받은 영향도 적지 않겠지만, 이 글에서는 앞으로 켈러 사상의 주요 궤적을 살펴보겠다는 의도에 맞게 필자가 임의로 선택한 측면이 있었습니다. 다음 글부터는 구체적으로 켈러의 저서를 하나씩 살펴보면서 좀 더 자세히 켈러의 사상과 사역이 제시하는 주요 시사점을 탐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일 먼저 다루게 될 책은 『탕부 하나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