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인, 신비주의” (an intelligent mysticism)를 향하여– 팀 켈러의 기도
기도는 전인류적으로 보편적인 현상입니다. 종교의 유무와 상관없이, 지적 수준과 상관 없이, 문화적 차이와 상관 없이, 과거에나 현재에도, 그리고 아마도 미래에도, 우리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살면서 한 두번 쯤은 기도합니다. 종교가 없는 사람들일 경우 막연한 초월적인 누군가를 향해서 바라는 소원이나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기도 하고, 종교가 있는 사람들일 경우에는 자신들이 믿는 초월자를 향해서 기도합니다. 현대인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더군다나 기독교가 점점 더 힘을 잃어가는 미국의 도시 지역, 그리고 한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에서는 기독교가 예전에 누렸던 영향력이 사라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성이나 신비주의에의 추구는 점점 더 증가하고 있습니다. 팀 켈러는 그런 문화적 배경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를 썼습니다. 그렇기에 맨하탄의 웨스턴 첼시 지역의 High Line 도시 공원의 설립자인 Robert Hammond가 인도로 3개월 간의 영성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는 기사가 뉴욕 타임스에 실리는 것도, 또는 부동산 재벌인 Rupert Murdoch이 초월적 명상(Transcendental Meditation)에 대해서 배우고 있다는 내용을 트위터에 올리는 것도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니라고 켈러는 말합니다 (13).
물론 기독교 전통 안에도 신비주의적인 명상이나 기도에 관한 유산들이 풍성합니다. 켈러가 몸담고 있는 개혁주의적인 복음주의 개신교를 벗어나면, 카톨릭이나 동방 정교에는 신비주의적인 기도와 명상의 실천에 관한 풍성한 유산들이 가득합니다. 이런 유산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 또한 켈러가 이 책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부분입니다.
단적으로 말하면, 켈러는 기도에 관한 한 지적인 신비주의(an intelligent mysticism)를 추구합니다. 켈러가 말하는 지적인 신비주의는 흥미롭게도 성경에서, 특별히 고린도 전서 14:15에서 기인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영으로 하는 기도와 마음으로 하는 기도는 각각 우리의 의식을 벗어나서 하는 기도와 의식 안에서 하는 기도를 뜻합니다. 이 책 전체를 통해서 고린도 전서 14:15는 켈러가 풀어나가는 기도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지침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두면 이 책을 읽어나가는데 있어서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또 하나, 켈러가 자신의 기도에 대한 이해를 잡아나가는데 도움을 준 구절로 언급하는 부분은 로마서 8:15-16입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켈러는 자신의 멘토인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를 비롯해서, 저명한 복음주의 신약 학자인 토마스 슈라이너(Thomas Schreiner)의 이 구절에 대한 주해를 참조하면서, 바울은 여기에서 자신이 몸소 체험했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신비 체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학자들의 견해에 의지해서, 신비주의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세워나갑니다 (14). 신비주의를 배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권장하는 것입니다. 물론 거기에는 조건이 있긴 하지만 말이죠 (그에 대해서는 앞으로 다루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언급했다시피, 켈러의 신비주의는 어디까지나 지적인, 신비주의입니다. 그렇기에 켈러가 신비주의에 어느 정도 손을 흔듦으로써 현대 문화에 개방적인 태도를 보였다면, 그 앞에 붙는 ‘지적인’이라는 형용사는 현대 문화의 기도에 대한 태도를 비평적으로, 그리고 무엇보다도 신학적으로 접근하도록 해줍니다. 따라서 이 서평의 나머지 부분에서 저는 켈러가 말하는 “지적인”이라는 말의 의미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켈러는 우리의 기도에 대한 이해가 우리의 신학에 기반을 두고 있지 않을 경우 분명히 다른 무언가에 기반을 두게 되어 있다는 전제를 가지고, 우리의 기도에 대한 이해는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신 일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기도가 되기 훨씬 이전에 이미 우리는 “우리의 기도에 대한 압도적인 하나님의 말씀하심”(55)을 경험해야 합니다. 그러한 경험은 성경에 나와 있는 복음을 계속해서 들음을 통해서 가능해집니다. 복음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그 분이 우리를 위해서 하신 일이 무엇이고, 그 일이 우리의 삶에 가지고 있는 의미가 무엇이냐에 대해서 계속해서 전달합니다.
따라서 우리의 기도가 복음 메세지에 기반하지 않을 경우, 첫번째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존재 가치를 기도하는 행위를 통해서 찾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즉 우리가 얼마나 기도를 열심히 하느냐에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가치 있는 존재가 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가 열심히 기도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게 될 경우, 그것이 우리의 기도하려는 노력 때문이었다고 생각하게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럴 경우 역으로 보면, 우리가 기도를 열심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것을 얻게 되지 못할 경우, 하나님에 대해서 분노하고 실망하며, 심지어 하나님을 떠나게 될 가능성 또한 생기게 됩니다. 이런 기도에 대한 오해가 불러오게 될 더 근본적인 위험성은 궁극적으로는 우상 숭배입니다. 복음 메세지가 없을 경우,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상상합니다. 즉 우리의 욕망을 우리의 하나님에 대한 이해에 투영시킵니다. 그리고 그러한 투영이 현실에서 어긋나게 될 경우 성경에 나와 있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와는 상관 없이, 결국 우리 스스로의 우상을 향해서 기도하고, 또 실망하는 결과가 초래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복음은 우리의 존재 가치가 우리의 기도 행위에 달려 있지 않다고 말하며, 더더군다나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고 꿈꾸는 우리의 행복을 단지 우리가 열심히 기도한다고 해서 이루어주는 분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기도하며 관계를 맺는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가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기도에서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복음에 기반을 둔 기도를 할 수 있을까요? 켈러에게 있어서 우리의 기도 생활이 복음에 기반을 둔 신비적 체험이 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은 성경 묵상(Meditation on the Bible)입니다. 묵상은 성경 연구(Bible Study) 이후에 우리의 삶에 그러한 주해가 가지는 함의를 철저하게 적용시키는 과정입니다. 그러한 적용이 없이는 우리의 기도 생활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경험하는 신비적 체험으로까지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이 켈러의 주장입니다. 여기에서 켈러가 중점적으로 살펴보는 성경 구절은시편 103편2절인데요. 아래와 같습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여기서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는 Forget not all his benefits라고 영어로는 표현됩니다. 켈러는 “잊어버리다”라는 표현이 특히 성경에서 자주 등장한다는 사실에 집중하는데, 왜냐하면 성경에서 이 말의 의미는 실제로 다가오게 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켈러가 드는 예시에 의하면 이런 것입니다. 한 10대 소녀가 학교에서 자신을 좋아해주는 남학생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을 불평하면서 켈러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것도 알고, 내가 구원받을 거라는 것도 알겠어요. 하지만 우리 학교에 나를 좋아하는 남자애가 한 명도 없는데, 하나님이 날 사랑하시는게 도대체 무슨 소용이죠?”
켈러에 의하면 이 여학생은 하나님의 사랑의 실재를 잊어버렸습니다. 그 실체적 체험이 이 여학생에게 없습니다. 그 대신 남학생들의 사랑을 받는 것이 더 큰 실재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가 이 여학생의 생각, 가치관, 느낌, 기억, 관점, 습관, 그 모든 것들에 영향을 끼치고 깊숙이 파고 들어가지 않는다면, 이 여학생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의 은택이 어떤 것인지 잊어버린 것입니다.
켈러는 책 전체를 통해서 이 점이 바로 자신이 가진 확신임을 여러 번 강조합니다. 그것은 “복음의 능력을 마음으로 경험하게 되는 것은 오직 기도를 통해서만 일어난다”(15) 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택을 잊지 않는 것이란, 마치 이 여학생이 남학생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을 가장 중요한 실재로 여기듯이,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서 베풀어주신 것들이 내 마음에서 가장 중요한 실재가 되는 것입니다. 단, 여기서 켈러가 얘기하는 마음(the heart)이란, 우리가 가장 사랑하고 가장 꿈꾸며, 가장 애착을 가지고 있는, 만약 그것이 사라진다면 우리의 삶이 의미가 없어지게 될 정도로 우리 삶을 이끌어가는 무언가가 (그게 무엇이든지 간에) 자리잡고 있는 곳입니다. 켈러는 성 어거스틴의 통찰을 따라서, 우리의 삶의 근본 문제는 우리 마음이 하나님이 아닌 것들을 붙잡고 애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며, 따라서 복음의 능력이란, 하나님이 아닌 것들이 자리잡고 있는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에 대한 가장 큰 사랑으로 바뀌어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즉 사랑의 질서가 새롭게 재개편되는 것(reordering of our loves)입니다. 이 여학생의 예에서도 볼 수 있듯이 우리에게는 하나님보다 우리가 더 실재로 느끼며 살아가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리고 기도, 특별히 복음에 기반을 둔 기도만이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의 질서와 우선순위가 재개편되는 능력을 경험하는데 유일한 통로가 된다고 하는 것이 켈러의 주장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런 경험이 가능한 것일까요? 켈러는 복음에 기반한 기도에 몰입하기 위해서는, 성경 연구 뿐만 아니라, 성경 묵상이 필수적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성경 연구란 성경이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과정을 말합니다. 즉 설교자들이 흔히 주해(exegesis)라고 부르는 과정이 이 과정입니다. 비록 주해라는 말을 써서 어렵게 표현한 듯 싶지만, 누구나 (조금만 도움을 받으면) 성경을 나름대로 연구할 수 있고, 그런 연구를 통해서 어느 정도는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비록 그 깊이는 연구자가 누구이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켈러에 의하면 (켈러는 이런 프레임을 존 오웬에게서 빌려옵니다) 여기서 멈추면 복음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는 기도를 체험하기란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성경 묵상이 필요합니다. 켈러는 묵상을 “성경의 메세지가 우리의 삶에 변혁을 일으키는 정도까지 깊이 숙고하는 것”(150)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한 세가지 방법을 제시합니다. 첫번째는 성경의 메세지를 가지고 이 메세지가 하나님과 나의 관계에, 나와 나의 관계에, 나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나와 세상의 관계에 가지는 함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깊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려면 두번째로, 성경 메세지를 “깊이”들여다 봄을 통해서 나 자신을 “깊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깊이”라는 말은 내 감정, 성향, 사고 방식, 습관, 관계를 맺는 방식, 상처, 두려움, 공포, 그 모든 것들에 속속들이 들어가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만, 성경 메세지가 던지는 질문을 가지고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번째이자 마지막으로 그렇게 해서 깨닫게 된 것들이 지금 나와 공동체의 삶에 던지는 통찰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이 책은 켈러 자신의 개인적 경험에서 시작합니다. 갑상선 암에 걸렸었고, 아내인 캐시 여사는 크론 병에 걸렸었던 1999년 가을, 켈러는 기도해야만 했습니다. 거기에 2001년에는 뉴욕 시민 전체를 두려움에 떨게한 9/11도 있었지요. 이렇게 해서 리디머 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한지 10년이 지나서야 켈러는 “나는 기도를 재발견하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캐시 여사가 그런 사건들 이후 매일 저녁에 함께 기도하자고 했고, 이제껏 그 기도를 하루도 쉬지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이 책은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켈러 자신의 기도의 여정을 솔직하게 담고 있는 책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켈러의 설교가 왜 그렇게 강력한지, 그 비밀이 여기에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스스로 그 지난한 성경 연구와 묵상의 과정, 그리고 기도의 과정을 거친 후에야 메세지를 전하는 과정을 지난 20년 간 계속 해왔다면, 그렇게 되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신학을 시작한지 15년이 지났지만, 부끄럽게도 아직 성경을 묵상하고 기도로 연결되며 변혁을 경험하는 과정이 저의 삶에 규칙적인 습관으로 자리잡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비록 하나님의 은혜로 여러 관계 속에서, 독서를 통해서 복음의 변혁적 능력을 일부나마 체험하며 살아왔지만, 성경 자체를 가지고 기도하면서 복음이 주는 유익을 누리는 삶이 저의 삶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켈러의 이 책은 저에게 다른 어떤 책보다도 큰 도전 거리를 담고 있는 책이 되었습니다. 켈러가 말하는 것들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제가 직접 기도의 장에 뛰어들어야 하며, 또 성경 연구와 묵상이라는 지루하고 어려운 과제를 가지고 그렇게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에게 저와 같은 동일한 도전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 책을 제대로 읽으신다면 독자 여러분 모두 동일한 도전을 받게 되시리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