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삶(wholehearted living)을 위한 내 삶의 통합에의 여정-브레네 브라운(Brené Brown)의 라이징 스트롱(Rising Strong)
혹시 독자 여러분은 마음의 고통과 육체의 고통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마음이 아픈 것과 몸이 아픈 것 중에 어떤 쪽이 더 심각할까요? 어떤 쪽이 우리 건강에 더 안 좋을까요? 오늘 서평할 책인 라이징 스트롱(Rising Strong)의 저자 브레네 브라운은 2011년 미국의 국립 정신 건강 연구원과 약물 남용 연구원에서 연구한 결과를 바탕으로 육체의 고통과 마음의 고통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어쩌면 약간 놀라운 이야기를 합니다.
In a 2011 study funded by the National Institute of Mental Health and by the National Institute on Drug Abuse, researchers found that, as far as the brain is concerned, physical pain and intense experiences of social rejection hurt in the same way.” (Daring Greatly, 71)
(2011년에 국립 정신 건강 연구원과 약물 남용 연구원에서 진행한 연구에 의하면, 육체적 고통과 사회적인 거부에 대한 격한 경험은 뇌에 관한 한 같은 방식으로 고통스럽다는걸 연구자들은 발견했다.) (마음 가면, 71)
이 연구에 의하면, 누군가가 나를 내가 인정받고 싶은 방식으로 인정해주지 않을 때, 나를 가치 있는 사람으로 받아주고 대우해주지 않는 것 같을 때, 관계 속에서 내 존재가 거부를 당할 때 우리가 겪는 고통은 육체적 고통 못지 않게 아픕니다. 그 아픔이 단지 마음의 아픔이 아니라 실제로 겪는 아픔이라는게 저 연구가 말하는 바이죠. 그런데 안타까운 점은, 우리는 누군가가 나를 이렇게 별 가치 없는 존재로 대우하는 일을 자주 겪으면 겪을 수록, 특히 부모님이나 가족, 친한 친구들이 나를 가치 있는 사람으로 대해주지 않는 경험이 늘어날 때, 그런 경험에 따라서 우리 스스로를 바라보게 되고, 또 그런 우리 자신을 싫어하고 거부하게 되기도 한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관계에서 거부 당하는 경험은 단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과의 관계에서도 나타난다는 거지요.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더 흥미로우면서도 안타까운 점은, 우리 인간은 애초부터 관계 속에서 인정 받고 우리의 가치를 알아주기를 바라는 욕구를 타고 태어났기 때문에, 그런 욕구가 거부 당하는 경험을 하면 저절로 본능적으로 그런 경험의 충격파를 흡수하고, 줄이고, 피하기 위한 나름의 대책을 만들어낸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대책은… 바로 그런 경험을 하게 만든 우리 자신의 일부를 우리 스스로 거부하고 밀쳐내는 것입니다. 다른 이들이 싫어하는 우리의 어떤 부분을 우리도 같이 싫어하거나, 혹은 아예 무시하거나, 무감각해지거나, 대신 다른 이들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우리 안의 다른 면을 특별히 부각시키거나… 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방식으로 우리가 겪는 관계에서의 거부를 다루기 시작할 때, 우리 안에는 자연스러운 분열이 일어납니다. 내 감정에 솔직해지기가 어렵게 되고, 마음이 말하는 것을 듣기 보다는 사회적 압력에 눌려서 나 자신을 거기에 맞춰서 바꿔 갑니다. 그러는 와중에 분열된 우리의 내면은 계속해서 아프다고 소리를 내지만, 우리는 이미 그 소리를 들을 마음이 없습니다. 한 동안 그 소리를 듣지 않고 살아 왔기에 이제는 그 소리를 듣는게 낯설고 어렵기도 하고, 또 한 편으로는 그 소리를 들어봤자 사회적으로 관계적으로 나에게 득이 될 것도 없어 보일 뿐더러, 무엇보다 그 소리를 한 번 듣기 시작하면 지금 내가 해결해야 할 산더미 같은 문제들—예를 들면 먹고 사는 문제들, 아버지나 어머니로서, 아들이나 딸로서, 남편이나 아내로서 감당해야 하는 모든 역할들—을 제대로 처리할 수도 없게 되고, 한도 끝도 없이 감정이 나를 끌고 내려가는 나락으로 빠져 들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막연함과 불확실함, 두려움이 우리를 사로잡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 모든 두려움과 불확실성, 막연함과 낯선 감정을 이겨내고, 내가 마음 깊이 묻어 놓았던 그 경험들, 그 감정들, 더 이상 쳐다보지도 않고 애써 덮으려고 했었던 그런 아픔을 다시 꺼내놓고 살펴볼 수만 있다면, 그래서 내 안의 분열이 도대체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떤 부분을 싸매고 붕대를 감아주고 꿰매야 하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면 분열된 나의 내면을 다시 통합하는 첫 걸음을 뗀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통합과 회복의 과정은 막상 실제로 겪게 되면 당연히 너무 힘들지만, 일단 한 번 겪어내고 나면, 그래서 이제는 분열된 우리의 내면을 어떻게 보듬어주고 돌보아야 하는지를 우리가 알게 된다면, 일상 속에서 우리가 감당하는 많은 일들과 역할들을 더 잘 해낼 수 있게 도와줄 겁니다. 우리의 내면이 좀 더 건강하게 바뀌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앞으로 겪게 될지도 모를 고난이나 어려움에 대처할 때 더 이상 우리의 내면을 분열시키지 않아도 괜찮도록, 좀 더 온전한 내가 되어서 살아갈 수 있게 해줄 겁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가 경험하는 이런 내면의 변화는 곧바로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좀 더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것이고, 삶이 우리에게 주는 행복과 의미, 만족을 좀 더 잘 누릴 수 있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오늘 서평할 브레네 브라운의 라이징 스트롱(Rising Strong)은 바로 이런 우리 내면의 분열을 어떻게 다시 통합하고 회복시킬 수 있을지, 그 과정을 사람들이 어떻게 겪어내야 하는지를 인도해주는 친절한 안내서입니다. 책의 저자인 브레네 브라운은 미국 휴스턴 대학(the University of Houston)에서 사회복지(social welfare)를 가르치고 있으며, 수치심(shame)과 취약성(vulnerability)에 관한 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작가이자 강연자이며 학자인데요. 그에게 있어서 라이징 스트롱(Rising Strong)이란, 자신의 내면을 통합하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이 거쳐야 할 하나의 과정인 동시에 또 그들이 계속적으로 삶에서 살아내야 할 실천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분열된 우리의 내면을 다시 통합할 수 있게 해줄까요? 다시 말하면, 분열된 우리의 내면이 통합과 회복의 길을 걷기 위해서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곳은 어디일까요? 브레네 브라운은 전혀 주저함이 없이 그런 지향점은 온전한 삶(wholehearted living)이라고 말합니다. 브라운이 말하는 온전한 삶이란, 나의 삶에 대한 통합적인 긍정을 가리킵니다. 삶을 부분적으로 긍정하는 사람은 참 많습니다. 하지만 삶 전체를 통합적으로 긍정하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삶은 어렵고 힘들며, 부정적인 경험 투성이이기 때문입니다. 부정적인 경험들은 우리의 내면에 생채기를 내고, 그 생채기는 우리 내면에 감추고 싶은 부분, 보여주기 싫은 부분이 생기게 만듭니다. 이렇게 되면 삶에 대한 통합적인 긍정은 요원해집니다.
그러므로 삶에 대한 통합적인 긍정, 곧 브라운이 말하는 온전한 삶은, 내 삶에서 내가 감추고 가리고 싶은 부분, 다른 이들에게 뿐만 아니라 나 스스로 조차도 보기 싫은 부분을 먼저는 스스로에게 드러내고, 그 이후에는 다른 이들에게 드러낼 수 있는 용기를 가지기 시작할 때 가능해집니다. 그래서 브라운에게는 수치심과 취약성이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수치심이란, 관계에서 거부 당하는 경험을 통해서 (“수치심은 관계의 끊어짐에 대한 두려움이다” (브라운, 마음 가면 69)) 생겨난 감정일 뿐만 아니라, 그 때문에 생겨난 우리 내면의 분열을 지속시키고 더 강화시키는 원동력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관계의 끊어짐을 경험할 때 관계를 끊어지게 만든 그 부분을 감추고 숨깁니다. 그렇게 하게 만드는 힘이 바로 수치심입니다. 수치심에 맞서는 취약성이란, “결과에 대한 통제가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우리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고 다른 이들이 볼 수 있게 하는 용기”(라이징 스트롱, 4)입니다. 드러내기 어렵고 보여주기 힘든 부분을 기꺼이 드러내고 보여주겠다는 의지이며 힘입니다. 흥미롭게도 브라운은 자신의 연구를 통해서 사람들이 자신의 드러내기 어려운 부분을 드러내고 말로 표현하기 시작할 때 수치심은 사라진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수치심과 취약성은 상극이며, 온전한 삶을 추구하기 위해서 수치심은 반드시 맞서 싸워야 할 감정이고, 취약성은 우리가 반드시 추구해야 할 감정입니다.
만약 과정이자 실천으로써의 라이징 스트롱에서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바가 온전한 삶(wholehearted living)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그런 온전한 삶에 다다를 수 있게 해주는 수단은 무엇일까요? 당연히 그런 수단은 한가지가 아닐 것입니다만, 브라운의 경우,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narrative)를 그 수단이라고 말합니다. 브라운은 이야기 연구자(narrative researcher)입니다. 이야기 연구자는 사람들을 만나서 인터뷰하고,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 안에 감춰진 것들, 공통적인 패턴, 깔려 있는 전제 등등을 통해서 삶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어떻게 살아야 제대로 살 수 있는지 등등을 찾아 나가는 사람입니다.
생각해 보시면, 여러분들 또한 여러분들의 삶의 이야기를 통해서 여러분이 정말로 누구인지, 어떤 때 어떤 감정이 드는지, 왜 어떤 감정은 반복적으로 나를 괴롭히는지 등등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걸 아실 겁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어렸을 때 계속적으로 “남자는 울면 안된다”는 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들은 우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할 겁니다. 왜냐하면 운다는 것은 남자가 아니라는 뜻이며, 곧 약하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어쩌면 다른 남자들이 우는 걸 보면 경멸이나 멸시의 감정을 느끼게 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자신이 울고 싶어질 때 자기 자신을 향해서 수치심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이런 내면의 분열—자신의 일부에 대해서 수치심을 느끼고, 감추려고 하며, 그런 모습이 행여나 자기 자신이나 다른 이들에게 드러났을 때 견디기 어려워 하는 것—은 항상 그 사람의 삶의 이야기—어렸을 때부터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우는 것은 남자가 아니라는 메세지를 듣고 자란 경험—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감정을 느끼거나, 혹은 그 감정을 억누르거나, 어떤 삶의 태도를 가지고 있거나, 그렇지 않거나, 또 어떤 삶을 지향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이 모든 것들은 우리 삶의 이야기 안에 담겨 있다는 브라운의 신념은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찾아 가는데 정말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해 줍니다.
자, 이제 우리는 브라운이 말하는 라이징 스트롱을 한 단계 한 단계 안내 받을 준비를 이제 마쳤습니다. 1) 우리가 지향하는 목표가 온전한 삶이며, 2) 그 온전한 삶에 이르기 위해서 이야기라는 수단을 사용할 거라는 점. 이 두가지만 알면 이제 라이징 스트롱으로 본격적으로 들어가 볼 수 있습니다. 브라운은 이 책에서 라이징 스트롱을 통해서 온전한 삶에 이르기 위해서 크게 세단계를 밟아 나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세단계는 “알아차리기(reckoning)-진상을 간파하기(rumble)-혁명(revolution)”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번째 단계인 알아차리기(reckoning)란, 우리 삶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 과정(walking into our story (37))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 삶의 이야기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평소에는 먹고 사느라 바빠서 미처 돌아보지 못했던 우리 삶의 이모저모를 좀 더 자세히 살필 기회를 얻게 됩니다. 우리로 하여금 우리 삶의 이야기로 들어갈 수 있게 해주는 도구는 바로 우리의 감정입니다. 왜 그런지는 곧 자세히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두번째 단계인 진상을 간파하기(rumble)는 우리 삶의 이야기 안으로 들어가서, 그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과정입니다. 우리 삶의 이야기에는 우리가 보기 싫은 우리의 모습, 애써 거부하거나 마음 깊은 곳에 밀어 넣어 두었던 우리 삶의 이면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어디에서 분열을 경험하고 있고, 또 어떤 부분에서 통합과 회복이 필요한지를 알려면 우리가 보기 싫은 우리 자신을 직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어려운 과정을 브라운은 우리 스스로의 이야기를 온전히 우리의 것으로 받아들이기(owning our stories)라고 말합니다. 영민한 독자들은 이미 알아 차리셨겠지만, 이 단계가 라이징 스트롱 과정에서 가장 길고 어려운 과정입니다. 실제 이 책은 총 11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 rumble 단계가 가장 분량이 많습니다. 브라운은 5장부터 10장까지, 무려 6장의 챕터를 이 rumble 단계를 설명하는데 할애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인 혁명(revolution)은 1과 2를 바탕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새롭게 써내려가는 작업입니다. 아직 이 세 단계 모두 좀 추상적이고 잘 와닿지 않을 수 있지만, 앞으로 실제 사례를 들면서 얘기를 풀어가다보면 무슨 얘기인지 아시게 될 겁니다.
책의 전체 구조에 대한 얘기가 나온 김에 이 책의 전체 구조를 말씀드리자면, 1장은 책 전체의 논의를 여는 장으로서 취약성(vulnerability)에 대한 개론적인 설명입니다. 2장과 3장은 브라운 개인의 경험을 통해서 라이징 스트롱 과정이 어떻게 펼쳐지게 되는지를 도식적으로 설명하고, 4장과 5장은 2장과 3장의 논의를 바탕으로 각각 알아차리기(reckon) 단계와 진상을 간파하기(rumble) 단계를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합니다. 그리고 6장부터 10장은 진상을 간파하기(rumble) 단계에 대한 세부적인 설명입니다. 이 6개의 장에서는 자기 의로움(self-righteousness), 실망, 기대, 분노, 애도(grief) 등의 감정 뿐만 아니라, 정체성, 다른 이들의 나를 향한 비판 등과 같이 2단계인 진상을 간파하기 단계를 거쳐 가면서 우리가 맞닥뜨리게 되는 여러가지 이슈들을 어떻게 다뤄내야 하는지를 상당히 자세하게 설명합니다. 마지막 11장은 비로소 세번째이자 마지막 단계인 혁명(revolution) 단계를 풀어내면서 책 전체를 정리합니다. 책을 읽으실 때 이런 책의 구조를 기억하시면서 읽으신다면 아마 전체적으로 책의 내용을 정리하시는데 크게 도움을 받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라이징 스트롱 과정의 각 단계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각각의 단계를 이론적으로만 설명하는 대신, 저자인 브라운이 파멜라(Pamela)라는 인물을 만나면서 겪게 된 자신의 감정과 경험을 프로세스하는 과정을 따라가면서 라이징 스트롱 과정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지요.
브라운은 어떤 컨퍼런스에 강사로 갔다가 강연을 마치고 식사하기 위해서 줄을 서 있다가 파멜라라는 여성을 만납니다. 사실 만났다기보다는, 파멜라가 브라운에게 접근을 해옵니다. 파멜라의 직업은 이벤트 회사의 강사 섭외자였고, 그 날도 강사 섭외를 위해서 이 컨퍼런스에 참석한 것이었습니다. 식사를 위해서 줄을 서 있다가 자신에게 다가온 파멜라를 보고 어쩔 수 없이 얘기를 시작한 브라운은 짧은 시간 안에 파멜라에 대해서 다음의 세가지를 알게 됩니다 (라이징 스트롱, 22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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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멜라는 자신의 직장을 싫어한다. 왜냐하면 그녀의 직장 상사들이 그녀에게 만약 직원을 줄여야 한다면 자신의 자리가 가장 먼저 잘려 나갈 것이라고 항상 말하기 때문이다.
- 파멜라는 정신 건강 관련 공부를 한 적은 한 번도 없으나,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다른 수많은 정신 건강 관련 강사보다 자신이 훨씬 더 좋은 강연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파멜라의 꿈은 정신 건강 관련 강사가 되는 것이다.
이 짧은 얘기 속에서 브라운은 파멜라가 자신의 직장 상사들을 향한 분노를 숨기고, 겉으로만 상사들을 좋아하는 척 하면서 살고 있다는걸 알아차렸고, 그다지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은 마음에 식당의 자기 자리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파멜라는 브라운을 따라서 브라운과 같은 테이블에 조인했고, 곧바로 그 테이블에 앉아 있던 사람들(거의 다 대학생들)에게 진정성 없는 기쁨(fake excitement)을 조장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브라운은 “파멜라 안의 분노와 원한을 파멜라가 얼마나 마음 속에 가둬 둘 수 있을지 싶었다”(223)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합니다. 파멜라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하는 파멜라의 내면의 분열을 알아차린 것이죠.
불편한 식사 자리를 급히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이후 며칠이 지나서, 브라운은 파멜라에게 이메일을 하나 받게 되었고, 그 이메일에는 브라운이 Pema Chödrön이라는 인물을 소개할 때 발음이 잘못 되었었다는 걸 지적하는 내용이 들어 있었습니다. 브라운은 굉장한 수치를 느꼈고, 곧 어떻게 파멜라에게 되갚아 줄 수 있을지를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후에 이메일을 보내서 같은 방식으로 파멜라에게 창피를 주는 내용을 보냅니다.
브라운은 그 이메일을 파멜라에게 보내고 나서 처음에는 엄청 기분이 좋았다고 말합니다. 자신에게 창피를 준 파멜라에게 복수를 했으니까요. 하지만 브라운은 자신의 상담 치료사인 다이애나(Diana)와의 정기 세션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합니다. 보통 라이징 스트롱의 과정은 이렇게 시작이 됩니다. 누군가를 향해서 그 사람이 안되기를 바라게 될 때, 혹은 자신이 엄청난 수치심을 느낄 때, “내가 왜 이렇게 느끼고 있지?” “내가 왜 저 사람이 잘 안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것이지요. 이 과정이 바로 첫번째 단계인 알아차리기(reckoning) 과정입니다. 이 과정에 들어가기 전에 선행적으로 겪어야 하는 경험이 있는데, 그것은 브라운이 facedown-in-the-arena라고 부르는 과정입니다. 직역하면 ‘경기장에서 고꾸라지기’ 정도가 될텐데, 여기서 arena를 브라운은 “우리 스스로를 보게 되거나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게 되는 때나 장소”(라이징 스트롱, xxi)라고 규정합니다. 그리고 이런 순간이나 장소는 자녀 양육이 될 수도 있고, 연애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관계들은 우리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않을 수 없는 관계들이기 때문입니다. 브라운의 경우 파멜라에게 수치를 줌으로써 복수하고 싶어했던 그 순간이 바로 facedown-in-the-arena의 순간이었습니다. “난 파멜라가 스스로를 하찮게, 그리고 어리석게 느꼈으면 했었다. 나는 그녀가 수치심과 두려움, 그리고 자신은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으면 했다” (230). 이런 감정에 집중하느라 자신이 이런 감정을 느낄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브라운은 자신을 돌아보면서 자신이 이런 감정을 누군가를 향해서 느꼈다는 것 자체를 보게 됩니다. 이런 facedown-in-the-arena는 단지 다른 사람이 있어야만 가능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브라운이 이런 감정을 반추하게 되었던 계기는 브라운의 상담 치료사였던 Diana와의 상담 세션을 통해서였긴 했지만, 어쨌든 라이징 스트롱의 첫번째 단계인 알아차리기(reckoning)가 이렇게 시작된다는 점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이렇게 한 발 떨어져서 자신을 바라볼 때, 스스로 당혹스럽게 여겨지는 감정을 느낀다면 이제 그런 감정을 느끼는 계기를 만들어준 이야기로 들어갈 계기가 마련된 겁니다. 브라운은 파멜라와의 관계를 통해서 그런 감정을 느꼈고, 또 그런 감정을 느꼈던 자기 자신을 바라보면서 또 한 번 당혹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을 통해서 자신의 이야기가 어떤 것이었기에 그런 감정을 느끼게 된 것인지를 찾고자 했기 때문에 브라운에게는 바로 이 사건이 알아차리기 단계를 열어주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그런 감정을 통해서 자신의 삶에 이야기에 들어가게 된 브라운은 이제 왜 자신이 파멜라의 이메일, 특히 자신의 발음을 지적하는 이메일에 그토록 수치심을 느꼈는지를 돌아보다가 자신의 삶의 일부를 발견합니다. 이것이 바로 라이징 스트롱의 두번째 단계인 진상을 파악하기(rumble) 단계입니다. 그것은 브라운의 일부인 텍사스 주민이라는 사실과 관련이 있습니다. 한국으로 치자면 경상도 사람들이 독특한 사투리를 가지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텍사스 출신의 사람들 또한 독특한 사투리를 가지고 있는데, 브라운은 파멜라의 자신의 발음에 대한 지적이 자신의 텍사스 출신이라는 열등감을 건드렸다고 말합니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텍사스 출신이라는 점이 굉장한 자부심을 가져다주는 수단일 수도 있습니다만, 브라운에게는 텍사스 출신이라는 점이 열등감으로 다가왔었다는 점입니다. 사람마다, 삶의 이야기마다 무언가를 어떻게 받아들이냐가가 다르니까요)
“9학년 때부터 나는 나의 텍사스 출신이라는 정체성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나는 애니 홀(Annie Hall: 1977년에 개봉한 영화 애니 홀의 주인공, 뉴욕에 살며, 패션 감각이 뛰어나고 세련된 인물로 등장)이 되고 싶었다. 나는 소호(SoHo: 뉴욕의 패션 중심지)에서 복층 아파트에 살면서 매주 엄청난 호가를 부르는 분석가와 만나는 뉴욕의 지식인이 되고 싶었다… 음, 하지만 결국 나는 애니 홀보다는 애니 오클리(Annie Oakley: 미국의 저격수, 여기서는 시골과 촌스러움의 대명사)와 더 비슷했다” (235).
이렇게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돌아보면서 브라운은 왜 자신이 파멜라의 발음 지적에 그토록 분노했는지, 수치심을 느꼈는지를 알게 되었고, 이제 브라운에게 남은 것은 이 이야기를 어떻게 새롭게 다시 쓸 수 있느냐입니다. 진상 파악하기(rumble) 단계를 이렇게 마치고 나면,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세번째 단계인 혁명(revolution) 단계입니다. 이 단계에서 브라운은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다시 쓸 기회를 얻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다시 쓰여지는 이야기는 가치의 재규정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미국의 저명한 소설가인 토니 모리슨(Toni Morrison)을 인용하면서 브라운은 이렇게 말합니다. “토니 모리슨은 말했다. “정의는 정의 내리는 사람에게 속한 것이지, 정의 내려지는 대상에게 속한 것이 아니다.” 내가 배운 것은 내가 가치 있다고 믿는 것이 무엇인지 새롭게 규정해야 한다는 것이며, 나 스스로가 그런 새로운 규정 안에 들어가야 한다는 점이다” (247).
그래서 브라운은 자기를 다시 정의하기 시작합니다. 자기가 텍사스 출신이라는 것을 왜 부끄럽게 여겼는지, 텍사스 출신이 자랑할 점이 얼마나 많은지, 텍사스 사람처럼 발음한다는 것은 전혀 창피할 일이 아니라는 점도 말입니다. 그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새롭게 써내려가기 시작하면서 브라운은 이전처럼 자신이 텍사스 출신이라는데 대해서 수치심을 더 이상 느끼지 않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브라운이 말하는 우리 스스로의 이야기를 온전히 우리의 것으로 받아들이기(owning our stories)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제껏 어둠 속에 있었던 우리 삶의 이야기에 빛을 비추는 것, 즉 그 부분에 대한 의식과 이해를 키워가는 것” (249) 입니다.
이렇게 해서 라이징 스트롱 프로세스의 대략적인 큰 그림을 그려 보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이 가진 장점은 사람들로 하여금 실패(=facedown-in-the-arena의 순간이나 장소)를 되도록 빨리 극복해 내는 대신, 실패를 곰곰이 묵상하면서 그 실패를 통해서 내 삶의 이야기를 다시 돌아보고, 그렇게 함으로써 나를 새롭게 규정할 수 있고, 나의 가치를 새롭게 바꿔나갈 수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실패의 순간을 견디기 어려워하지만, 브라운은 실패의 순간을 깊이 반추해 보고, 실패를 천천히 지나가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지요. 이 책이 가진 또 다른 장점은, 그렇게 실패를 천천히 지나가면서 만나게 되는 우리 안의 여러가지 감정들—비탄(grief), 죄책감(guilt), 수치심(shame)—등을 제대로 다루어낼 수 있게 도와주는 유익한 통찰을 제공한다는 점일 겁니다. 특별히 진상을 파악하기(rumble) 단계인 5장에서 10장 사이에는 우리가 평소에 자주 느끼지만 보통 어떻게 다루어야 할 지 잘 모르는 우리의 감정들을 지혜롭게 처리하고 받아들이는 유익한 통찰들이 가능합니다. 이 서평에서는 그런 감정들을 자세히 다룰 공간이 없긴 하지만, 브라운이 무엇보다도 수치심에 집중하는 까닭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수치심이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와 직결되어 있고, 그에 따라서 우리가 스스로 부끄럽게 여기는 부분, 아픈 손가락 같은 부분들을 다른 사람들 앞에 자신 있게 보일 수 있느냐 없느냐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브라운이 말하는 대로, 만약 우리의 삶이 온전해지기 위해서(whole hearted living) 우리가 스스로의 취약성(vulnerabililty)을 받아들여야 한다면, 그걸 못하게 막는 최후의 적이 바로 수치심이기 때문이며, 수치심을 넘어서는 과정이 바로 라이징 스트롱 프로세스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이 가진 장점은 글을 쓰는 일의 치유적 효과(the healing value of writing)에 대해서 잘 부각하고 있다는데 있습니다. 브라운은 자신의 책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스스로의 삶에 대해서 써보라고 말합니다. 특히 어떤 감정이 올라올 때, 그리고 그 감정이 당혹스럽게 느껴질 때, 그 감정이 기반을 둔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써보라고 말합니다. 글을 쓰는 일은 우리에게 삶을 반추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굳이 다른 사람 앞에서 내 창피한 부분을 다 드러내놓고 얘기하지 않아도, 글을 씀으로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스스로의 창피한 부분을 보여주게 되고, 이렇게 하면서 라이징 스트롱 프로세스를 따라간다면 온전한 삶의 여정을 걸어가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서평자인 저 또한 여기에 깊이 공감합니다. 글을 쓰는 일, 특히 자신에 대해서 글을 쓰는 일 자체가 가진 엄청난 치유적 효과는 무엇보다도 삶을 온전하게 하는데 큰 도움을 주는 것 같습니다. 이 서평을 읽고 나서 라이징 스트롱에 관심이 생기신 독자들이 계시다면, 꼭 스스로의 삶에 대해서 글로 써보시기를 추천합니다.
하지만 이런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서평자인 저는 아직 이 책에 대한 의구심을 두가지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은 과연 브라운이 하는 이야기들이 치열한 삶의 현장—직업 현장, 가정 현장, 학교 현장—에서 먹히겠는가에 대한 의구심이 있습니다. 특히 직업 현장의 경우 효율성과 경제성을 최고로 여기는 집단인데, 과연 이런 라이징 스트롱 프로세스가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브라운이 그런 의문에 대해서 이후에 나온 자신의 책 Dare to Lead (2018)에서 답을 한다고 하니 그 책을 서평하면서 이런 의구심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두번째 의구심은, 브라운이 주로 백인 중산층 여성들 사이에서 각광 받는다는 점입니다. 이 말이 가리키는 것은, 브라운의 이야기는 브라운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여성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자기를 돌아볼 시간적이고 공간적인 여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주로 호평을 받고 있다는 것이죠. 이 말은 브라운이 우리 사회가 가진 구조적인 한계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물론 브라운이 사람들의 내면의 건강에 대해서 주로 연구하는 사람이기에 이런 점에 대해서 브라운을 심하게 비판하는 것은 어쩌면 공평하지 않은 처사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가 내적으로 건강하기 위해서는 공평한 사회 제도와 구조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또 사실 브라운은 자신이 사회 정의 운동에 굉장한 관심을 가져 왔다고 책에서 말하기도 하고요) 수치심과 취약성이라는 문제를 단지 개인의 내면의 차원에서만 다루는 대신, 구조적이고 사회적인 차원에서 다루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브라운의 책 라이징 스트롱은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읽고 꼭 잘 소화해서 내 것으로 만들어 볼 가치가 있는 내용을 담고 있는 책입니다. 내적인 치유와 회복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이야기와 관계의 맥락, 감정에 대한 사회과학적 연구 등에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서평을 통해서 책 전체의 맥락과 대강의 논지를 파악하셨다면, 꼭 책을 집어들고 읽어보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