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풀어 쓴 영적 돌봄

영적 돌봄(spiritual care)이란 무엇일까요. 올해 6월에 이 곳 텍사스 주 샌안토니오에 위치한 미국 보훈처 소속의 Veterans Affairs병원에 온 이후, 영적 돌봄(spiritual care)은 원목으로서 제가 환자들을 방문하고 그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 거의 전체를 규정 짓는다는 말을 숱하게 들었지만, 정작 영적 돌봄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애매한 개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CPE 첫번째 유닛을 들으면서 고든 힐즈만(Gordon Hillsman) 박사의 쉽게 풀어 영적 돌봄(Spiritual Care in Common Terms)이라는 책을 수업의 교과서로 만나게 되었고, 이 책은 저에게 영적 돌봄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도와주었습니다. 그 중에서 제가 얻은 가장 큰 통찰 세가지를 오늘 이 글을 통해서 여러분과 나누어 볼까 합니다.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영적 돌봄에 대해서 얻은 첫번째 통찰은 영성(spirituality)이 영적 돌봄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느냐와 관련이 있습니다. 두번째 통찰은 병원 현장이 사람들이 자신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현장이라는 점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 통찰은 아직 충분히 제 안에서 성숙하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제가 더 연구하고 공부하고 싶은 분야, 즉 취약성과 수치심 사이의 관계를 의료 현장 속에서, 특히 영적 돌봄이라는 차원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는데 있습니다.

우선 첫번째 통찰인 영성이 영적 돌봄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느냐에 대해서 이 책이 저에게 준 도움에 대해서 나누어 보겠습니다. 책은 영성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영성이란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무언가 앞에서 그 무언가에 대처하고자, 그리고 그 무언가를 즐겁게 대하고자 사람들이 하게 된 것, 믿게 된 것, 숙고하게 된 것, 그리고 실천하게 된 것 모두를 가리킨다” (29) 세상에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 가득합니다. 우리 중 몇몇은 그렇게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을 굳이 우리의 통제 하에 끌어넣으려고 하다가 낭패를 당하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의 미래를 통제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심지어 우리 몸의 반응을 통제하는 것조차도 불가능합니다. 시간도 통제할 수 없습니다. 그 밖에도 세상에는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 수없이 많이 존재합니다. 의료 현장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질병과 고통, 그리고 죽음 또한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것들에 속합니다. 아무도 아프고 싶어서 아픈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죽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모두 다 죽으며, 또 모두 다 병에 걸리고 고통을 당합니다. 그러므로 의료 현장에서의 영성이란, 질병과 고통, 죽음이라는, 인간이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한 실재 앞에서 인간이 그에 대처하기 위해서 믿고, 행하고, 생각하는 그 모든 것을 가리킵니다. 사람이 아프거나 죽음이 임박하게 되면 그의 모든 것이 바뀝니다. 그가 지금껏 믿고 따르며 살아왔던 것들, 신뢰했던 관계들이 모두 새롭게 혁신되는 계기가 바로 질병과 고통, 죽음의 순간입니다. 그러므로 병원 현장에서의 영성이란, 이런 처지에 처한 사람들이 행하는 것들을 가리키며, 따라서 영적 돌봄이란, 그렇게 힘들어하고 아파하는 사람들의 영적인 필요를 돕는 모든 행위를 가리킵니다. 영적인 필요란 무엇일까요. 사람들이 자신들이 이제껏 살아왔던 영성의 방식이 무너지는 것을 경험하면서 자신들에게 정말로 무엇이 필요한지를 깨닫게 되는 그 제반의 필요를 책은 영적 필요라고 부릅니다. 따라서 영적 돌봄은, 그러한 사람들의 영적 필요를 알아차리고, 그 영적 필요를 채워주는 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이 특히 도움이 되었던 부분은 사람들의 영적 필요를 22가지로 나누고 각각의 영적 필요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함으로써 원목들로 하여금, 혹은 영적 돌봄이 필요한 누군가를 도와줘야 할 상황에 처한 사람들로 하여금 주변 사람들이 과연 어떤 영적 필요를 가지고 있는지, 또 그러한 영적 필요를 어떻게 채워주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책은 또한 22가지의 영적 필요를 5가지 종류로 나누고 각각을 이렇게 나열합니다.

  1. 감정적 지지 (7가지): 트라우마로 인한 충격에서 기인한 필요/이야기를 나눌 필요/공포와 근심/분노와 적개심/슬픔, 낙담, 그리고 절망/깊은 상처/힘을 북돋워 줌
  2. 주요한 상실 (5가지): 현재 진행형의 혹은 최근에 경험한 상실/이전에 경험한 상실/죽음/삶의 재정비/소외
  3. 종교적/영적 필요 (5가지): 종교적 지지/영적 승인/영적 상담/후회로부터의 자유/가르침
  4. 위탁에의 필요 (5가지): 의료 윤리의 혼동/중독 혹은 정신 질환 관련 상담/애정 생활에서 기인한 고통/옹호/가족 갈등

원목들이 병원에서 사람들의 영적 필요를 채워준다고 할 때, 그 필요는 바로 다음의 22가지 필요를 가리키며, 이 필요가 각각의 환자들의 상황 속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분별하고 그러한 각각의 필요를 어떻게 채워줄 수 있는지 아는 일이 영적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22가지의 영적 필요들은 모두 기존에 사람들이 채택했던 영성의 방식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될 때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상황 앞에서 극심한 혼란과 스트레스를 경험하며, 자신들이 이제껏 보지 못했던 자신들의 삶의 약점을 깨닫게 되며, 이제껏 자신들의 삶의 철학이 어떤 면에서 자신들의 눈을 가리게 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두번째 통찰이 중요해집니다.

두번째 통찰은 병원이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취약성을 드러내게 하는 현장이라는데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취약성이 드러난다는 점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취약성이 드러난다는 사실은 바꿔 생각하면 사람들이 이제껏 자신들의 삶을 이해해왔던 방식이 바뀔 계기가 만들어진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고단하고 어려운 삶 속에서 사람들은 모두 나름대로 생존 방식을 작동시키며, 방어 기제를 만들어내서 고통스럽고 두려운 상황을 가능한 한 피해가려고 합니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그렇게 고통스럽고 두려운 상황, 고단하고 어려운 삶이 가져다주는 어려움을 제대로 직면하고 그 안에서 충분히 스스로를 돌아보고 성찰하는 삶만이 성숙할 수 있는 삶이 된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병원은 사람들의 영적 필요를 적절하고도 지혜롭게 채워줄 수만 있다면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가 가진 두려움과 방어 기제, 나름대로 굴려왔던 생존 방식을 다시 돌아보는 가운데 자기 스스로를 직면하는 계기를 만들어내는 장소, 즉 삶의 지혜와 성숙을 위한 장소가 될 수 있습니다. 취약성은 그런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힐즈만이 이 책에서 강조하는 부분은 우리의 취약성이 드러날 때, 우리는 우리의 삶의 이야기를 새롭게 쓸 수 있는 계기를 맞게 된다는 겁니다. 이제껏 이해해왔던 우리 삶의 이야기, 우리가 살아냈고, 앞으로도 살아내려고 했던 삶의 이야기,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규정짓는 바로 그 이야기가 무참히 산산조각이 날 때, 바로 그 순간이 우리 자신을 새롭게 규정 짓는 계기가 열리는 순간이며, 새로운 관계의 연결이 일어날 수 있는 순간이 됩니다. 원목으로서 사람들에게 영적 돌봄을 제공한다는 의미는 바로 이런 순간에 직면한 사람들을 어떻게 돕는지를 아는 사람이 된다는 의미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의 삶이 더 성숙해지고 지혜로워질 수 있도록 인도하는 사람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 부분에서 저는 원목으로서 저에게 주어진 영적 돌봄이라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다시 한 번 절감했고, 더 큰 사명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어떻게 하다보니 원목으로서 살아가게 되었지만, 다시 한 번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마지막으로 세번째 통찰은 비록 이 책에서 직접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제가 이제껏 공부해왔던 수치심과 취약성 사이의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데서 기인합니다. 취약성은 수치심을 없애는데 가장 특효약이라는 점을 제가 이 블로그에서 계속해서 서평했던 브레네 브라운은 상당히 강조한 바 있습니다. 만약 병원 현장에서의 영적 돌봄이 이렇게 사람들의 취약성과 관련이 깊다면, 그 말은 곧바로 영적 돌봄이 사람들이 가진 수치심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라는 뜻이 됩니다. 이 통찰은 아직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무언가를 쓰기에는 아직 제가 부족합니다만, 앞으로 계속해서 저의 생각이 발전하면서 아마 이 부분에 대해서도 다시 더 긴 글을 좀 더 깊은 사고를 담아서 풀어낼 기회가 반드시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긴 글 읽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9월의 두번째 서평으로 또 곧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서평 쓰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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