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 말하는 죄란 무엇일까요? 라인홀드 니부어는 “원죄 교리는 기독교 신앙의 교리들 가운데 유일하게 경험적으로 검증 가능한 교리라고 말합니다만, 매튜 크로아스문(Matthew Croasmun)은 그의 책 죄의 창발: 로마서에 나타난 우주적 폭군 (The Emergence of Sin: The Cosmic Tyrant in Romans)에서 창발 이론을 가지고 로마서 5-8장을 읽어냄으로써 이런 주장에 대해서 제한적으로 동의합니다. 우선 저자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하자면, 이 책은 크로아스문의 예일 대학교 신약학 박사 논문을 책으로 펴낸 것이며, 크로아스문은 현재 예일대학교가 위치한 코네티컷 주의 뉴 헤이븐이라는 도시에서 Elm City Vineyard Church의 목회자로 일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 책에서의 크로아스문의 주된 논지는 죄가 사회적 실재인 동시에 개인적이고 신화적 실재라는 것인데, 사실 이런 주장은 기독교 사상사에서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크로아스문 자신도 죄의 개인적 측면에 대해서는 이미 루돌프 불트만이 자세히 조사했고, 죄의 사회적 측면에서는 해방주의 계열 신학자들이 그 작업을 했으며, 죄의 신화적 측면에 대해서는 불트만의 제자이기도한 에른스트 케제만이 밝혔다고 인정합니다. 크로아스문의 논지가 새로운 것은 이런 세가지 죄의 측면들이 각각 조사되기는 했습니다만, 그 세가지 모두를 통합적으로 볼 수 있게 해주는 실재론이라는 차원에서 죄의 세가지 차원이 통합적으로 이해된 적은 아주 드물었으며, 더군다나 바울이 로마서 5-8장에서 얘기하는 죄가 인격으로 나타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신학적 논의에서 이런 부분을 자세히 조사한 학자들이 거의 없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크로아스문의 문제 의식은 죄의 세가지 차원을 통합적으로 표현할 만한 실재론을 구성하는 것이 가능하냐는 것이고, 그렇다면 이런 실재론 안에서 죄의 인격성은 어떻게 다루어질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크로아스문은 이런 두가지 문제 의식을 다루기 위해서 최근 각광 받고 있는 창발 이론을 도입합니다. 일반적으로 성서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써클에서 성서 자체에 내재하지 않는 외부 이론을 끌어 들여서 성서를 해석하는 작업은 그리 환영받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시도가 성서 본문이 원래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밝혀내는데 별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크로아스문의 경우는 좀 다른 것 같습니다. 비록 창발 이론을 도입해서 로마서 5-8장을 해석해내고자 하기는 하지만, 그는 자신의 책에서 자신이 창발 이론을 도입하는 까닭이 “이 본문이 당시의 지리적, 시대적 여건에서 무슨 의미였는지를 찾아내고자 하는데 관심이 있다”(103)고 밝힙니다. 본문 자체에 집중하지 않은 채로 외부의 이론 전통을 끌어들여서 성서를 해석한 대표적인 예로 (특별히 죄론에 관해서) 크로아스문은 루돌프 불트만(Rudolf Bultmann)을 언급합니다. 이 책의 1장은 불트만이 그의 죄론을 어떻게 비신화화라는 그의 프로젝트 속에서 진행하는지를 자세히 조사하며, 불트만이 성서가 얘기하는 죄의 인격성을 너무 섣불리 무시한 채로 실존주의적인 해석에만 집중한다고 말하면서 그를 비판합니다.
그렇다면 창발 이론이 로마서 5-8장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가져다 주는 유익은 무엇일까요? 우선 창발 이론은 현대 실재론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이원론과 환원론 사이에서 두 실재론의 단점을 커버한다는 겁니다. 현대 실재론이 가지는 주된 문제점은 각 학문 분야마다 각각 다른 실재에 대한 이해와 인식론이 지배하고 있다는 것인데, 그러다보니 실재 자체를 통합적으로 바라보려는 시도가 부재하다는 것이 애초에 창발 이론이 나타나게 된 배경을 이룹니다. 이런 측면에서 창발 이론이 가진 장점은 이원론이 하듯이 실재를 둘로 나누지도, 환원론이 하듯이 실재를 하나로 환원시키지도 않으며, 다만 존재하는 다양한 실재의 각각의 측면이 긴장 관계 속에서 그 독특성을 유지하면서도 하나의 통합된 관점으로 보게 해준다는데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이런 통합적 실재론으로써의 창발 이론은 두가지 기본 원리를 가지고 있는데, 그 두가지는 바로 병발 (supervenience)과 하향적 인과 (downward causation) 입니다. 병발이란 “고차원적인 실체가 병발적인 기반에 의존한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무슨 말인지 모르니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우리는 “꽃병의 깨지기 쉬운 성질은 그 원재료들의 미시적인 물리적 구조에 병발한다 (즉 그러한 물리적 구조에 우선해서 나타난다)고 말합니다. 마찬가지로, 물의 젖는 성질은 H2O의 화학적 구조에 병발한다고 말합니다” (33) 이 말은, “사회적인 것이 개인적인 것에 병발해서 나타난다는 말과 매한가지입니다. 즉, 비록 “사회적인 것은 개인적인 것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지만 (사회적인 것은 개인적인 것에 의존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인 것이 개인적인 것으로 환원되지는 않는다” (35) 는 것입니다. 이를 두고 병발이라고 말합니다. 이와 아울러, 하향적 인과 관계란 사회적 공동체들이 개인들의 병합체로써 창발하지만, 되려 “그 개인들을 제한하는 작용을 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병발과 하향적 인과 관계를 통합적으로 죄론에 적용시키면서 크로아스문은 로마서 5-8장의 죄론을 새롭게 다시 이야기합니다. “죄인인 인간들과 죄악된 사회 구조 사이의 복잡한 연결 고리를 통해서 창발하게 된 인격으로서의 죄는 집단적인 인식적 주체로서 작용하며, 비록 그 구성원들인 각 개인의 존재에 의존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개인들의 활동으로는 환원될 수 없는 독특한 인식적 활동 영역을 드러냅니다” (137). 이런 창발 이론적인 죄에 대한 이해는 바울 내러티브에 나오는 노예의 주인으로서의 죄에 대한 묘사와 잘 맞아 떨어지면서도, 각 개인이 하나님의 법을 윤리적, 법률적으로 위반하는 측면에 대한 강조를 약화시키지도 않습니다.
결론적으로, 크로아스문은 자신이 하겠다고 한 작업을 잘 해내고 있다고 판단이 됩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면을 넘어서 적어도 두가지 면에서 큰 의미를 가집니다. 첫번째로, 크로아스문의 프로젝트는 기독교 신학 담론의 언어가 일반 학문의 언어에 어떤 식으로 대화 파트너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만약 창발 이론을 통해서 제시된 죄에 대한 실재론이 다른 영역에서의 대화에 연결될 수 있다면 (그리고 그렇게 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어 보입니다. 특별히 인문학 쪽에서는 그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아 보입니다.) 기독교 신학 담론은 새로운 중흥기를 맞이할 수도 있습니다. 두번째로 죄에 대한 창발 이론적인 설명은 유죄성(culpability)의 범위를 크게 확장시킵니다. 일반적으로 현대인들이 받아들이는 유죄성은 개인적인 책임에 머무르는 반면, 성경은 죄성을 좀 더 보편적인 것으로 묘사하는데, 이런 면에서 현대인들이 죄에 대해서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생깁니다. 창발 이론적인 실재론은 현대인들에게 왜 유죄성이 보편적인 것인지를 설명하는데 아주 도움이 되며, 성경의 묘사하고도 잘 맞아 떨어집니다. 이것은 신앙인들의 회개와 죄 고백에 대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전체적으로 크로아스문의 책은 전문적인 내용을 담고 있기에 제대로 소화하기가 어려운 책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화를 잘 해낸다면 여러 면에서 아주 유익한 내용을 많이 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목회자와 신학자들에게 적극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