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find the English version below.]
안토니오 네그리의 욥의 노동(The Labor of Job)은 굉장히 흥미진진한 텍스트입니다. 일단 네그리는 신을 믿지 않는 유물론자이고요. 맑시스트 정치 철학자입니다. 거기에 욥의 노동을 네그리가 썼던 때, 정확히 말하면 네그리가 욥기를 펼쳐 들고 읽기 시작한 때는 그가 감옥에 있던 1982년이라고 하네요. 과연 유물론적인 맑시스트 정치철학자인 그가 인간의 고통을 다루는 욥기를 왜 펼쳐들게 되었을까? 라는 질문이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맴돌았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제 생각의 흐름은 애초에 던졌던 질문과는 완전히 다른 흐름으로 흘러 갔습니다. 이래서 철학자 가다머는 독서를 하는 독자는 (대화에 참여하는 대화자도 마찬가지로), 독서를 통해서 경험하게 되는 배움이나 깨달음의 흐름이 자신의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고 했던 거였겠죠. 주도권이 마치 독자에게 혹은 대화자에게 있는 듯 싶지만, 사실 독서도 대화도, 그 주도권은 독자나 대화자가 아닌, 독서의 주제, 혹은 대화의 주제에 있다는 사실을 말이죠. 제가 네그리의 책을 읽으면서 경험했던 것이 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애초에 의도했던 질문은 사라져 버리고, 다른 질문과 배움의 경험을 하게 되었으니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저는 네그리의 책을 통해서 기독교의 칭의 교리와 욥의 경험 사이의 연결 고리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서평은 욥의 경험과 칭의 교리 사이에 어떤 연결 고리가 존재하는가에 대해서 풀어나갈 생각입니다.
일단 네그리의 논리가 펼쳐내는 그림에 대한 설명이 좀 필요합니다. 네그리는 척도(measure)에 관심이 많습니다. 척도란, 우리 삶의 기준이 되며, 세계가 구성되고 세워진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누구나 잘못을 하면 그에 맞는 벌을 받는다는 인과응보라든지, 내가 일한 만큼, 노력한 만큼, 착하게 산 만큼 내 가치를 인정받는 체계를 네그리는 척도라고 부릅니다. 말하자면, 세상은 이런 척도로 인해서 돌아갑니다. 척도가 없이는 세상에 무질서와 혼돈만이 남을 것이며, 사람들 사이에는 갈등과 긴장이 극도로 심해져서 결국 공멸의 상태로 가게 될지도 모릅니다. 욥은 이런 척도 속에서 아주 잘 적응하면서 살았던 인물이었습니다. 도덕적 척도를 벗어나는 일을 한 적이 한번도 없고, 경제적 척도로 볼 때는 부유와 가난을 가장 위와 아래로 두고 있는 사다리의 거의 가장 윗부분에 위치했던 인물이었으며, 종교적인 척도로 볼 때에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지키지 않는 면이 없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욥에게 어느 날 자신이 믿었던 척도를 완전히 뒤집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당신께서 몸소 그와 그의 집와 그의 모든 소유를 사방으로 울타리 쳐 주지 않으셨습니까? 그의 손이 하는 일에 복을 내리셔서 그의 재산이 땅 위에 넘쳐나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당신께서 손을 펴시어 그의 모든 소유를 쳐 보십시오. 그는 틀림없이 당신을 눈 앞에서 저주할 것입니다” (욥 1:10-11)
“사람이란 제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 소유를 내놓기 마련입니다. 그렇지만 당신께서 손을 펴시어 그의 뼈와 그의 살을 쳐 보십시오. 그는 틀림없이 당신을 눈앞에서 저주할 것입니다” (욥 2:4-5)
척도가 사라졌습니다. 도덕적으로 의로운 사람에게는, 열심히 일하고 부지런히 산 사람에게는, 하나님을 잘 믿고 섬긴 사람은 그에 합당한 가치가 주어져야 하며, 거기에 따라서 상을 받거나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욥의 척도, 아니, 우리가 알게 모르게 우리의 모든 삶의 희망의 근거로 믿고 살아가는 이 세상의 척도가 욥의 삶 앞에서 전복되었습니다. 욥은 가족과 재산을 잃을 만한 악한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자신의 몸에 병이 걸릴 만한 나쁜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욥은 가족과 재산을 모두 잃었습니다. 몸에 병이 걸리고, 아내는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합니다.
척도가 사라진 것입니다. 신은 왜 하필 내 삶에 이런 일을 일어나게 만들었나? 내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라는 질문을 우리는 흔히 합니다. 특별히 나쁜 일이 일어났을 때, 집안에 화가 닥쳤을 때, 우리는 저런 질문을 합니다. 척도를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척도가 우리 삶의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욥은 사라진 척도 앞에서 하나님과 싸움을 시작합니다. 그림은 법정으로 옮겨집니다. 재판관은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피고도 하나님입니다. 욥은 원고인데, 피고와 재판관이 한 편을 넘어서서 하나입니다. 불리한 싸움입니다. 그런데 욥의 세 친구들이 나타났습니다. 욥을 변호하겠다고 모여들었습니다. 일주일 동안 같이 먼지를 뒤집어쓰고 울면서 아파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욥의 친구들은 처음에는 욥의 경험하는 한 악마와 다를 바가 없는 하나님 앞에서 욥을 변호하기 보다는, 그들이 믿고 있는 하나님의 정의의 법칙, 즉 척도를 변호하기 시작합니다. 욥이 무언가 잘못한게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을 거라는 겁니다.
“악이 입에 달콤하여 제 혀 밑에 그것을 감추고 아까워서 내놓지 않은채 입 속에 붙들고 있다 해도 그의 음식은 내장 속에서 썩어 배 속에서 살모사의 독으로 변한다네. 그는 집어삼켰던 재물을 토해 내야 하니 하나님께서 그것을 그의 배 속에서 밀어내시기 때문이지.” (욥 20:12-15, 소발의 변론)
네그리는 욥과 함께 그런 척도가 존재하지 않음을 역설합니다. 가끔씩 선한 사람에게 좋은 일이, 악한 사람에게 나쁜 일이, 부지런한 사람에게 상이, 게으름 사람에게 벌이 내릴 때가 있긴 하지만, 그걸 법칙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할 때 욥과 같은 일을 당할 가능성이 우리 누구에게나 있다는 겁니다. 또한 그런 까닭에 네그리에게 있어서 욥의 하나님은 절대악입니다. 그가 유물론자인 까닭에 하나님을 절대악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욥이 욥기에서 하나님을 절대악으로서 (즉, 아무 설명도 없이, 갑자기 욥에게 나타나서 내가 지은 것들을 보아라, 너가 그런 것들에 대해서 뭐를 알 수 있냐? 라고 물으면서 자신의 힘을 과시하지만, 정작 욥이 원하는 대답은 하지 않으니까요) 경험하고 있기에 그렇습니다. 그런 까닭에 네그리는 절대악이 되어버리는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기에, 신의 죽음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유물론자인 그의 믿음에 따라서, 인간이 유일한 존재로서 신과 같이 새롭게 창조하는 일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새로운 창조는 기존의 척도를 뒤집는 새로운 척도, 노동의 가치가 예전의 척도에서처럼 짓밟히지 않고, 노동과 생산이 인간의 존엄함과 연결되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그의 맑시즘적인 성향이 드러나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입니다.
네그리의 얘기는 그렇지만, 저는 서평자로서 네그리의 욥기 읽기를 좀 다르게 읽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저에게 있어서 중요한 개념은 네그리에게도 중요한 척도 개념입니다. 네그리에 의하면 욥은 척도의 몰락과 전복을 경험한 인물입니다. 욥이 네그리에게 희망을 가져다주는 까닭은, 척도가 부재한 상황에서 새로운 창조를 열어갈 수 있는 가능성을 욥이 열어준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여기에 대한 네그리의 자세한 설명은 독자분들께 책을 참고하시라는 말씀만 드리고, 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욥의 삶이 보여주는 척도의 부재 속에서 또 다른 척도를 바라보게 될 가능성을 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척도입니다. 세계는 척도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고, 그 세계 안에 존재하는 우리 모두 또한 척도에 맞춰서 우리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고 평가하지 않을 수가 없는 시대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 속에서 세계가 제시하는 척도를 뛰어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아니,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맞을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그러한 척도를 뛰어넘는 새로운 척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왔다고 말합니다. 나의 존재 가치와 나 자신에 대한 평가를 세계가 말하는 척도에 기준을 두지 말고 하나님 안에서 내가 어떤 존재로 나타나는지를 보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복음이 말하는 칭의의 척도입니다. 이 부분은 이 서평 지면에서는 좀 더 온전하게 논리를 제시하기가 일단 지면이 부족하다는 사실 외에도 여러가지 다른 이유 때문에 어렵습니다만, 제가 앞으로 계속해서 발전시켜 나가고, 더 공부해보고 싶은 분야이기에 저는 앞으로도 세상의 척도와 칭의가 말하는 척도 사이의 갈등과 변주, 그리고 칭의의 척도를 통해서 세상의 척도를 뛰어넘는 법에 대해서 다루어 보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LIKEELLUL
Antonio Negri’s The Labor of Job is a very intriguing text. First off, Negri is a materialist who doesn’t believe in God. Also, he is a Marxist political theorist. In addition, when he wrote this book in 1982, he was in the prison. For this reason, I could not help asking, “Why would a materialist, Marxist political critique like Negri pick up a book like Job?
As I go deep in my reading, however, that initial question went away, turning the flow of my thinking in an entirely different direction. Perhaps this is why philosopher Gadamer argued that readers engaging in reading (or conversation participants engaging in dialogue) should know that the flow of reading or conversations are not going to go in the way they want them to go. In other words, the initiative lies neither with the reader nor with the conversation participant, but with the subject of reading or conversation itself. This is what I have experienced while reading Negri’s book. Getting my original question out of sight, I have begun to ask a different question with different answers. To make a long story short, I get to see an important link between the doctrine of justification by faith and the experiences of Job through Negri’s book, and this review aims at making a (relatively short, work in progress) case for that.
To begin with, we need to be filled in with some explanations for the overall picture Negri is sketching. Negri is very interested in what he calls “measure.” Measure is the criteria by which we live our lives and by which the world we live is constructed. For example, the principle of causality of good and evil, or the system of rewarding the hardworking and the good and punishing the idle and the bad, this is what Negri calls the measure, and apart from measure the world cannot operate. Without measure the world will be left with disorder and chaos, intensifying the tension and conflict among people, eventually leading everyone to be annihilated. In this light, Job was a man of measure. He has never done anything that goes out of moral measure. By economic measure, his life was located at the top of the ladder between the poor at the bottom and the rich at the top. By religious measure, he was spotless in keeping God’s commandments, even taking care of his children’s duty of sacrificing before God.
However, one day something happened to Job that totally subverted all his trust in measure.
“Have you not put a hedge around him and his house and all that he has, on every side? You have blessed the work of his hands, and his possessions have increased in the land. But stretch out your hand and touch all that he has, and he will curse you to your face.” (Job 1:10-11)
“Then Satan answered the Lord and said, “Skin for skin! All that a man has he will give for his life. But stretch out your hand and touch his bone and his flesh, and he will curse you to your face.” (Job 2:4-5)
Measure is gone. Job’s measure, which is that the morally righteous, the hardworking, and the faithful all should be rewarded accordingly, has been gone. This is also the measure we put our trust in, without which we have thin ground for hoping for the future. Job has never done anything bad enough to lose all his family members and wealth. Job has never done anything wicked enough to make his body come down with serious illness. But still, Job has lost all his family members and wealth. But still, Job has been contracted with a disease. To make matters worse, Job’s wife burst out to Job, saying that Job should curse God and commit suicide.
In other words, in Job’s life there is no measure. For what did this happen to me? Why did God allow this happen to my life? are some of the questions we commonly ask ourselves, especially when we are struck with bad things in our lives. That is because we believe in measure. That is because measure is the criterion of our lives.
In the face of disappearing measure, Job immediately begins his fight against God. Now the scene is in a court. God is the judge. But God is also the defendant!! Job is the plaintiff. This is an adverse fight to Job’s part. Yet Job’s three friends have appeared! Their names are Eliphaz, Bildad and Zophar. They have cried with Job, and putting dust on their heads for seven days and seven nights. Even so, rather than going against God the Satan in the experiences of Job, defending Job’s cause, Job’s three friends begin defending for the measure! What they are saying is that all these happened because Job did something wrong. This way they show that people still believe in measure.
“Though evil is sweet in his mouth, though he hides it under his tongue, though he is loath to let it go and holds it in his mouth, yet his food is turned in his stomach; it is the venom of cobras within him. He swallows down riches and vomits them up again; God casts them out of his belly.” (Job 20:12-15, Zophar’s defense against Job)
What Negri is working against for debunking is the nonexistence of such measure as the principle of the causality of good and evil. While sometimes good things happen to the good, bad things to the bad, reward to the hardworking, punishment to the idle, Negri is saying that accepting it as a rule of life will danger all of us into the exactly same situation as Job’s. For this reason, Negri understands Job’s God as pure evil. This is not because his being a materialist has made him accept God as such, but because that is how Job experiences God in the overall account (namely, God appears to Job all of sudden and show off his power of creation such as Behemoth or Leviathan, asking Job if he could figure out any of these.) For this reason, since for Negri God the pure evil is as good as God the nonexistent, he goes on to declare the death of God, and following his materialist convictions, Negri asserts that we human beings as the only creative being in the world should plunge into the work of recreating the world order, not like the old one established on the old measure, in which the value of labor has been exploited and shattered into pieces, but on the new measure in which labor and production are connected to human dignity in the new world. This is where his Marxist inclinations show their true colors.
This is the story of Negri thus far, but I as a review of this book have read his book a bit differently, and the concept that has inspired me is, likewise, Negri’s notion of measure. According to Negri, Job is a person who has experienced the demolition and subversion of measure. The reason that Job provides ground of hope for Negri is that in the absence of measure Job shows a way out to re-creating and re-constructing the world he dreams of. (A detailed explanations Negri provides in his book I would like to refer the readers of this view to the according part, especially chs. 4 and 5). I see a different possibility for a new measure from Job’s life of the absence of measure, and that is the measure God shows to God’s children. As I said already, the world cannot exist apart from measure, and all of us who reside in it cannot exist without evaluating and scoring our own worth according to the measure. It would be awfully difficult to overcome this measure of the world. Or rather, it would be virtually impossible to overcome such measure. However, the Christian gospel tells us that through Jesus Christ a new measure has arrived. Rather than measuring my worth and self-evaluations on the basis of the measure of the world, such divine measure tells us that we ought to see who we are in God. This is the measure of the gospel. While I cannot fully provide the why and the how of this claim of mine, since I am going to develop this further, I will be able to succeed in making a case for this. Thank you.
LIKEELL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