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차드 보캄의 요한 계시록 신학(The Theology of the Book of Revelation)은 그 제목이 말해주듯이 요한 계시록이 가진 신학을 조사하고 있는 책입니다. 본격적인 요한 계시록 읽기 시리즈의 첫번째 책으로 이 책을 고른 까닭은, 이 책이 가진 개론적인 성격과 함께, 보캄이라는 탁월한, 요한 복음과 계시록 전문가가 다년간의 연구를 통해서 쌓은 통찰의 집약체로서의 이 책에 대한 신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역시 이 책은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다. 이 서평에서는, 첫번째로 요한 계시록의 다섯 가지 특징에 대해서 나누고, 두번째로는 그렇다면 요한 계시록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두가지 큰 원칙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첫번째 원칙은 요한 계시록 자체를 제대로 읽어내게 해주는 원칙입니다. 그리고 두번째 원칙은 요한 계시록을 어떻게 현대 문화 읽기에 기여할 만한 방식으로 읽느냐에 대한 것이입니다. 다만, 제가 여기서 나누는 다섯가지 특징과 두가지 원리는 보캄이 책에서 직접 얘기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제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질문과 고민들에 대해서 보캄의 책이 응답해주는 것에 대한 정리라고 보는 편이 더 좋을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의 다섯가지 특징
요한 계시록은 정말로 흥미로운 책입니다. 신비한 묵시에 관한 얘기를 담고 있으며, 그 묵시의 주제는 세계의 종말과 마지막에 일어날 일들에 대한 것입니다. 따라서 요한 계시록이 쓰여진 이후부터 많은 이들이 요한 계시록 읽기를 시도해 왔음은 당연합니다. 그 와중에 종교 개혁자 쟝 칼뱅 같은 경우는 성경 전체에 대한 주해를 했으면서도 요한 계시록만큼은 그 압도적인 신비 때문이었는지 요한 계시록 주해를 쓰지 않기도 했습니다. 보캄은 이 책에서 요한 계시록이 어떤 책인지에 대해서 꼼꼼하게 탐구해 나갑니다. 우선 요한 계시록의 장르는 3중적인데, 특정 독자에게(특별히 2-3장에 등장하는 일곱 교회, 그리고 더 넓게는 일곱 교회를 통해서 대표될 수 있는 후대 교회들과 그 교회들이 안고 있는 문제) 말하고 있다는 차원에서 서신서이면서, 독자들이 처한 현 상황을 진단하고, 하나님 나라의 성취를 위한 갈등과 고통을 말하며, 또 결국 그러한 갈등과 고통을 통해서 오게 될 하나님 나라를 말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예언서이기도 하며, 또한 마지막으로 저자인 요한이 본 긴 환상을 중심으로 요한 나름의 신학적 분석과 통찰로 세상의 종말과 마지막을 바라보는 시각을 제공하고 있다는 차원에서 묵시록입니다. 이런 책은 성경 전체를 통해서 계시록 밖에 없습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저는 먼저 요한 계시록을 차분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한 자리에서 읽었습니다. 제가 읽은 성경 역본은 카톨릭 번역 성경입니다. 이 성경은 새번역 성경과 마찬가지로 읽기 쉬운 요즘 문제를 사용하고 있어서 기존의 개역 한글판보다 훨씬 더 따라가기가 쉬웠습니다. 그리고 요한 계시록에 대해서 다음의 다섯 가지 특징을 보게 되었습니다.
- 요한 계시록은 굉장히 유대적인 책입니다. 보캄은 책 전체를 통해서 요한 계시록이 사용하는 시각적, 언어적 이미지들이 얼마나 구약 성경이 사용하는 이미지들에 깊이 기초를 두고 있는지를 상세하게 보여줍니다. 그 단적인 예로, 10장에서 요한이 두루마리를 먹으면서 배에는 쓰고 입에는 꿀 같이 달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구절은 독자들로 하여금 단번에 에스겔 2-3장에서 에스겔이 두루마리 책을 먹었던 장면을 떠오르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9장에 나오는 황충들(메뚜기)은 출애굽기의 메뚜기 재앙을 당연히 떠오르게 하고요. 그 외에도 당연히 구약의 대표적인 묵시 문학인 다니엘서에서도 많은 이미지를 따오고 있고, 이런 문학적 장치를 통해서 요한 계시록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이 책이 굉장히 유대적인 책이라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유대적 맥락을 무시하고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현대적인 사건들에 요한 계시록의 예언을 끼워 맞추려고 하는 것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 것인지를 보캄은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 1번의 자연스러운 논리적 귀결은, 요한 계시록은 굉장히 상황 중심적인 책이라는 사실입니다. 요한 계시록의 주제가 세상의 마지막과 예수의 오심, 그리고 요한이 본 환상에 대한 요한의 해석에 관련되어 있다는 것만 생각해보면 요한 계시록은 모든 상황을 초월해서 하늘의 이야기를 담고 있을 것만 같은 허상을 현대의 독자들에게 심어주기도 합니다만, 보캄은 요한 계시록이 쓰여진 목적 자체가 철저하게 그 당시 고통받고 탄압 당하던 그리스도인들에게 용기를 심어주기 위한 것이었고, 그러한 맥락 속에서 신앙을 위해서 희생하는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는 요한 계시록을 제대로 읽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 또한 이미 앞에서 언급했던 소위 세대주의적 요한 계시록 읽기, 앞으로 일어나게 될 사건들과 요한 계시록의 기록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성을 찾으려고 하는 읽기에 대한 보캄의 한 방(?)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 요한 계시록은 또한 매우 신학적으로 풍성한 책입니다 (또한 그리스도 중심적인 책입니다.). 보캄은 자신의 책을 조직 신학적 주제에 따라서 풀어나가는데, 삼위일체론에서 기독론, 구원론, 교회론과 종말론으로 나아가면서 얼마나 요한 계시록이 풍성한 신학적 통찰을 제공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특별히 제가 주목했던 부분은 죽임 당하신 어린 양, 그리고 그 어린 양을 예배하는 24장로와 네 생물이라는 이미지를 통해서 소위 부정 신학(negative theology: 하나님은 초월적이고 완전하신 분이기에 하나님에 대한 서술은 “~이 아니다”라는 식으로 표현될 수 밖에 없다는 신학)의 실마리가 되어 주는지를 밝힙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역설적으로 죽으심과 약해지심을 통해서 드러나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어떠한 분이심을 보여주는데 굉장히 강력한 이미지를 제공한다고 생각합니다.
- 2번이 가진 함의로써, 요한 계시록은 소위 밑으로부터의 신학 (theology from the underside) 를 하는 책입니다. 왜냐하면 요한 계시록이 가진 관점은 하늘의 하나님의 관점인 동시에, 로마 제국 하에서 압제 당하고 고통 받는 그리스도인들, 주변자와 소수자가 된 그들의 관점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런 면에서 요한 계시록은 현대의 해방 신학과 연결될 여지 또한 많습니다.
- 마지막으로, 요한 계시록은 정치-신학적인 책입니다. 보캄은 요한 계시록 4-5장의 어린 양에 대한 예배가 얼마나 제례적(cultic)이면서도 정치적(political)인 행위인지를 보여줍니다. 이러한 정치-신학적 예배는 그 당시 로마 제국의 통치 원리가 제례적-정치적이었다는 면과 아주 잘 상응됩니다. 보캄은 요한 계시록 17-18장의 바빌론 음녀(로마 제국만을 숭배하고 섬기게 만드는 영적 세력)가 17장의 붉은 빛 짐승(로마의 정치-군사적 세력)에 올라탄 것을 로마 제국의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번영만을 숭상하는 만드는 제례 세력과 정치적-군사적 세력의 하나됨을 상징한다고 봅니다. 이것은 사실 현대 신학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고 봅니다. 즉, 신학이 유일하신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예배와 숭상을 목적으로 한다면, 그런 신학은 어쩔 수 없이 정치적이며, 또 한 편으로, 정치는 궁극적으로 누구를 섬기고 충성을 바치느냐 하는 질문에 대답하는 차원, 곧 궁극적으로는 예배의 차원에 깊이 연관될 수 밖에 없기에 신학적이며 종교적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현대 정치 신학(political theology)의 출현은 이런 면에서 반가운 소식이 되겠습니다만, 이런 필수불가결한 신학-정치 사이의 관계는 아마 좀 더 깊은 탐구가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후에 이런 정치적 신학, 신학적 정치에 대해서 역사적으로 다루고 있는 시카고 대학의 정치학 교수 마크 릴라(Mark Lilla)의 사산된 하나님(The Stillborn God) 서평을 정치 신학 시리즈로 다룰 계획이 있습니다. 관심 있으신 독자는 미리 릴라의 책을 참고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제 남은 공간에서는 요한 계시록을 읽는 큰 두가지 원칙에 대해서 제시하도록 하겠습니다. 보캄의 책을 통해서 제가 얻게 된 이 두가지 해석 원칙은 제가 애초부터 가지고 있던 두가지 문제의식에 기인합니다. 첫번째는 요한 계시록이 이미 얘기한대로 특정 상황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책이라고 하면, 어떻게 세대주의적인 읽기에 의존하지 않고 현대 사회와 교회를 위한 요한 계시록 읽기가 가능한가이며, 두번째는 보캄이 요한 계시록의 기독론을 통해서 시도하는 신적 정체성 접근법(Divine Identity Approach)이 개인의 정체성을 가장 중요한 주제로 다루는 현대 사회의 담론 속에서 복음을 제시하는 통로가 될 수 있는가, 이 두가지입니다.
첫번째로, 요한 계시록이 가진 상황성을 고려해 볼 때, 요한 계시록의 예언적이고 묵시적인 기록들을 어떻게 읽어내야 할까라는 문제에 대해서 고민해 보겠습니다. 이미 얘기한대로, 세대주의자들은 요한 계시록의 기록을 어떻게 해서든지 현 시대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한 예언으로서 이해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아마도 부분적으로는 그러한 영향 때문에라도, 미국 대중 문화 속에서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Left Behind 시리즈도 만들어졌고, 지난 주에 How to Survive the Apocalypse 서평에서 얘기했던대로 사람들의 정서 속에 마지막에 대한 공포와 불안, 그리고 허무를 주제로 드라마나 쇼가 만들어지는 일이 아주 잦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보캄은 계시록의 예언적 묵시를 이렇게 바라보는 것은 아주 잘못된 이해라고 비판합니다. 보캄에게 있어서 예언적 묵시는 세가지 요소를 갖추고 있는데, 그것은 1) 현 상황에 대한 정확한 진단입니다. 계시록은 상황 속에서 드러난 악한 세력의 득세와 다스림 기저부에 숨겨진 일들의 실재를 드러내며,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그리고 악한 세력들에게 밝히 드러내어 폭로하는 작업을 합니다. 그리고 2) 예언을 하게 되는데, 계시록에 있어서 예언이란, 보캄에 의하면 단순한 현실 뿐 아니라, 앞으로 일어나게 될 일들에 대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 나라의 성취라는 관점에서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3) 예언적 묵시는 1차적 독자들, 그리고 후대의 모든 독자들에게 1)과 2)를 통해서 드러난 현실에 대한 응답을 요구합니다. 따라서 보캄은 요한 계시록의 예언적 묵시록은 절대로 운명주의적이지 않다고 말합니다. 아니, 절대로 운명주의적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계시록의 예언적 묵시에는 언제나 인간의 응답에 대한 여지를 남겨두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보캄에 의하면, 마치 요나서에서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했을 때 요나의 예언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운명적이지는 않지만, 무조건적으로 일어나야 하는 것은 단지 하나님의 나라가 반드시 성취될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 분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들의 종말론적 회복이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 뿐입니다 (149). 따라서 세대주의적인 운명주의, 비관주의가 요한 계시록 읽기에 들어갈 자리는 거의 없습니다.
한편으로, 보캄은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성취가 이루어지는 것을 방해하고 저항하는 모든 세력은 바빌론(즉 로마제국)으로 읽어도 무방하다고 주장합니다. 곧, 초대 교회가 저항하고 싸웠던 로마 제국의 압제에 대해서 성도들이 피 흘리며 싸우던 것에 대해서 용기를 북돋워 주고 결국 하나님의 나라가 승리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통해서 용기를 북돋워 주려고 했던 계시록의 메시지는, 세대주의적으로 불안과 공포를 조성하는 식으로, 운명주의적으로 읽지 않아도 충분히 오늘날에도 적용될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Any society whom Babylon’s cap fits must wear it (156), 즉 바빌론이 했듯이 똑같이 하나님 나라를 방해하고 저항하는 자들은 모두 요한 계시록의 바빌론과 똑같이 간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저 개인적으로는, 철학적 해석학의 선구자 Hans-Georg Gadamer가 기존의 저자의 의도(authorial intent)라는 전통적 해석학의 목표를 뛰어 넘어서 독자의 상황과 지평 속에서 텍스트를 해석할 때 발견되는 의미의 확장과도 굉장히 비슷하게 들립니다. 말하자면, 요한 계시록의 바빌론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 모습을 계속해서 드러내고 있지만, 그 양상은 그 당시의 바빌론과는 다를 수 있다는 것, 따라서 우리는 요한 계시록을 창조적이면서도 충실하게 읽어냄으로써 요한이 말한 의도를 충실하게 반영하는 한편, 요한의 지평에서는 읽어낼 수 없었던, 21세기의 바빌론의 양상, 21세기의 하나님 나라가 드러나는 양상을 통해서, 현 시대의 표적(signs of the times)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주제는 아마 앞으로 Michael Gorman과 Craig Koester의 요한 계시록 읽기를 통해서 더욱 명확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두번째로, 보캄이 이 책에서 풀어내는 그의 신적 정체성 접근(Divine Identity Approach)을 통한 기독론이 가지고 있는 잠재성을 통해서, 요한 계시록 읽기가 현대 문화 읽기가 되고, 더 나아가서 현대 문화를 도전하고 복음을 전하는 읽기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일단 보캄의 기독론의 신적 정체성 접근(Divine Identity Approach)은 고 기독론(High Christology: 초기 교회부터 그리스도는 이미 하나님과 동등한 분으로서 인식되고 있었다는 기독론)의 한 형태로써, 요한 계시록에서 그리스도를 칭하는 말들과 성부 하나님을 칭하는 말들이 동일하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춥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성부: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1:8)
그리스도: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1:17)
성부: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21:6)
그리스도: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22:3)
보캄은 이러한 칭호의 동일성을 바탕으로 (고대 시대에 칭호가 같다는 것은 현대의 그것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엄청난 중요성이 있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신성이 초기 교회부터 하나님과 동등한 것으로 인정받았다는 논증을 펼칩니다. 그것은 이 문제에 대한 기존의 두가지 접근 방식, 즉 엄격한 일신론(strict monotheism) 하에서 그리스도의 신성이 인정받을 수 있는 여지는 전혀 없었다는 것과, 두번째로 수정주의 역사(revisionist history)의 관점에서, 그리스도의 신성이 비록 하나님의 그것과 동일한 것으로 여겨지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그리스도는 일종의 신으로 여겨질 수 있었다는 관점입니다. 보캄은 이 두가지 접근을 부인하면서, 초대 교회의 다양한 문서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신성이 신적 정체성이라는 측면에서 하나님과 동등하게 여겨졌음을 그의 God Crucified를 통해서 좀 더 세밀하고도 완전하게 논증합니다. 이 논증에 대해서 자세하게 보는 것은 이 서평의 의도를 넘어서는 것이기에, 차후에 보캄의 책을 다룰 기회가 생길 때 하는 것으로 미루도록 하겠습니다. 현재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러한 신적 정체성 접근을 통한 기독론 이해가 현대의 화두가 된 진정성(authenticity)과 인정(recognition)이라는 주제에 깔려 있는 정체성(identity)이라는 화두와 깊이 맞닿을 여지가 아주 많다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누구나 다 진정한 자기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서 질문을 가지고 있고, 그렇게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서 사람들의 인정을 구합니다. 따라서 정체성이라는 화두가 현대 사회 속에서 굉장히 중요할 수 밖에 없고, 보캄이 요한 계시록 신학의 기독론 속에서 제시하는 그리스도의 신적 정체성 접근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의 정체성과 인정의 근거에도 큰 도전을 불러 일으킬 수 밖에 없습니다. 보캄이 이 책에서 얘기하지 않지만, 그리스도의 정체성과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의 정체성을 연결지어주는 중요한 고리를 저는 개인적으로 참예(participation)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삼위 하나님의 세상 속에서 그 분의 나라를 건설해가는 역사 속에 참예하는 것은 그 분의 사랑에 먼저 참예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것입니다. 이것은 물론 전체적인 그림은 절대로 아니고, 아주 아주 기본이 되는 뼈대 정도를 설명한 것에 불과합니다. 살을 붙이는 작업은 앞으로의 공부 속에서 계속해서 발전시켜나갈 계획입니다.
이외에도 할 얘기가 정말 많습니다만, 앞으로 계속해서 서평을 해나가면서 못 한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풀어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주에는 현대 기독교 영성의 대가 유진 피터슨이 바라보는 요한 계시록은 어떤 책인지를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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