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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교육, 그리고 실천 신학
박사 공부 나눔 세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첫번째 시간에 했던 얘기의 연장선 상에서 얘기를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첫번째 시간에는 가다머가 어떻게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천적 지혜(phronesis) 개념을 해석학적인 개념으로 발전시키면서 실천 철학의 토대를 놓았고, 그것이 어떻게 실천 신학으로 연결되었는지에 대해서 살펴 보았습니다. 오늘은 좀 더 실제적인 차원에서, 지난 세기를 걸쳐서 계속해서 지속되어 왔던 신학교 교육의 문제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신학교 교육이 중요한 까닭은 신학이 어떤 학문인지에 대한 선전제가 신학교 교육 안에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학문 분야이든지, 그 학문에서 다루는 지식의 본질이 무엇이며, 그러한 지식을 어떻게 가르치고 전달하며 새로 생산해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항상 그러한 지식을 가르치는 교육 기관의 철학적 선전제 안에 포함되어 있기 마련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신학의 경우, 보통 슐라이어마허 이후로 신학교 교육에 있어서 큰 변화를 겪게 되었다고 많은 학자들이 진단합니다. 신학적 지식은 일반적으로 교육 기관에서 가르치는 지식과 달리, 인격 형성과 굉장히 큰 연관이 있기에 Paideia라는 헬라적 교육 철학과 유대-기독교 교육 철학의 통합을 통해서 생겨난 교육적 비전이 중세 시대까지만 해도 신학교 교육에 있어서 큰 역할을 해 왔습니다. 하지만 계몽주의 이후, 지식이 계속적으로 실증적이고 실험 가능한 것으로, 좀 더 과학적인 것으로 인식되기 시작하면서 서구의 대학, 그리고 신학 교육에도 변화의 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의 신학적 지식이 인격 형성과 깊은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인식되었던 것과는 달리, 서구, 특별히 독일권 대학들에서 몰아치던 바람은 대학 교육과 지식의 본질을 Wissenschaft(과학적 지식)으로 바꾸어 놓았고, 신학은 실험도 할 수 없고, 전혀 과학적이지도, 이성적이거나 합리적이지도 않은 분야라고 치부되어 교육 기관에서 밀려나게 될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 구원자처럼 나타난 인물이 바로 흔히들 자유주의 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Friedrich Schleiermacher)입니다. 신학 교육이 대학교에서 사라지게 될 위기 앞에서, 슐라이어마허가 신학교 교육이 여전히 대학 안에 남아 있어야 한다고 사람들을 설득한 근거는 바로 신학교 교육이 다른 전문가(의사, 변호사 등등)들과 마찬가지로 종교 전문가들과 목회자들을 양성하는 교육이어야 하며, 그렇기 때문에 의학 대학원이나 법학 대학원과 마찬가지로, 목회자라는 전문가들을 키워내기 위해서 신학은 학교 안에 남아 있어야 한다고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던 까닭은, 슐라이어마허의 이러한 신학에 대한 이해는 그대로 신학적 지식 또한 여타 학문의 Wissenschaft(과학적이고 이성적인 지식)적인 성격 안에 가두어 두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되어, 신학은 의도치 않게 1) 철학과 유사한 철학적 신학, 2) 역사와 비슷한 역사 신학, 그리고 3) 전문가로서의 목회자가 교회를 운영하는데 필요한 기술적 지식을 가르치는 실천 신학이라는 세 분야로 나뉘어지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구분은 인격적이고도 통합적인 지식을 추구하는 신학적 지식의 본질이 흐릿해지게 만들었고, 결국 신학교 교육 또한 전문화, 세분화를 통해서 여러가지 분야로 나뉘어지게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교육적 패러다임을 흔히 목회자 중심의 신학 교육이라고 해서 clerical paradigm(목회적 패러다임)이라고 부릅니다. 이후에 이렇게 신학적 지식을 세가지 세부 분야로 분리했던 것은 더욱 나아가서 fourfold pattern(4중 패턴)이라고 하는, 곧 1) 성경 신학과 2) 조직 신학, 3) 역사 신학, 그리고 4) 실천 신학이라고 하는 현재의 신학교 교육이 따르고 있는 패턴으로 굳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신학적 지식은 앞서 말했다시피 통합적이고도 실천적인 지식이며, Wissenschaft라는 교육적 비전 이전에 존재했던 Paideia에의 추구를 다시 회복시키는 것은 점점 요원한 일이 되어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 시점에서 실천 신학이 신학이라는 분야가 추구하는 지식의 본질과 그에 따른 교육적 패러다임에 관해서 큰 전환점을 마련하게 해주는 계기를 만들게 되는데, 바로 그것이 phronesis의 비전입니다. 첫번째 박사 과정 공부 나눔에서 얘기했다시피, phronesis는 실천적 지혜로서 1) 실제로 현장에 뛰어들어서 알게 되는 지식이며(즉,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그리고 다른 이웃들과의 관계 속에 실제로 뛰어들어야 알게 되는), 2) 본질적으로 지혜를 추구하는 지식이라는 말입니다. 첫번째 공부 나눔에서 얘기했듯이 실천 신학은 이전의 위치, 즉 신학 분야 가운데 가장 하부 분야에 속한, 이론적이지도 않고 추상적이지도 않은 기술적 지식을 추구하는 분야를 칭하는 말에서 신학이 원래 추구하는, 그리고 추구해야 할 실천적 지혜에 초점을 두게 만드는 신학을 칭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실천 신학이 추구하는 지식과 그 비전이 바뀌었다고 해서 기존의 4중적 패턴이 하루 아침에 바뀌게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여전히 조직 신학자들, 역사 신학자들, 성경 신학자들, 그리고 실천 신학자들 사이의 학문적 경계가 존재하며, 때로 그러한 학문적 경계는 생각했던 것보다 넘어서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천 신학의 이런 변화는 분명히 신학자들 사이에서, 그리고 신학 교육 사이에서 조용한 변화의 바람을 불러 일으키고 있음이 틀림 없습니다. 당장 제 주변의 교수님들과 얘기를 나누어 보아도, 신학자들 사이에서, 신학교 교육을 담당하시는 학자들 사이에서 점점 더 기존의 4중적 패턴에 대한 반성의 바람이 불고 있고, 어떻게 해야 신학교 교육을 통해서 인격 형성에 기여하는, 원래의 통합적 지식이라는 신학적 지식의 본질을 살리는 방향으로 신학을 가르칠 수 있을까, 또 목회자 중심의 신학교 교육이 아닌, 신학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특별히 목회자 후보생으로 제한을 두지 않는 방향으로 교육을 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저 또한 실천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계속해서 이런 고민을 하면서 신학적 지식이 제대로 전달될 수 있는 신학교 교육 체계를 세워갈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LIKEELLUL
Theological Education, and Practical Theology
This is my third sharing for what I am studying in my doctoral studies. Today, as a continuation of what I shared at the very first piece, I will talk about phronesis (practical wisdom), developed by Aristotle. Gadamer’s contribution to phronesis is that he added a hermeneutical flavor to the notion, establishing the ground for practical philosophy, eventually resulting in the development of practical theology. For this piece, I would like to take a close look at the problem of theological education that has lasted for the past couple of centuries. The reason that theological education is crucial is that behind theological education lies the philosophical presuppositions about what theology is. Whatever academic field there is, the answers to a set of philosophical questions regarding what the nature of knowledge the field is teaching, learning, and producing are embedded in the educational institution teaching and learning that field.
For theology, many scholars diagnose that it was after Schleiermacher that theological education went through a lot of radical changes. Theological knowledge, unlike other academic knowledges, has everything to do with character formation, for which the Hellenistic and Judeo-Christian vision of Paideia had prevailed up until the end of the Medieval Times. However, after the Enlightenment, as knowledge becomes more positivistic and experiment-based, and more scientific, a wave of change began to storm the Western universities. While theological knowledge prior to these times was inextricably related to character formation, Western, especially German universities began to understand knowledge more and more as Wissenschaft (scientific knowledge), and since theology does not belong to such knowledge category, it was regarded as unscientific and irrational, leaving little space for theology in the university. The hero for theology at this stage was Friedrich Schleiermacher, often called the Father of Protestant Liberal Theology. At the crisis of theological education disappearing from western higher education, the ground for Schleiermacher to persuade people that theological education should remain within universities was that theological education was part of professional school education, training specialized experts such as doctors and lawyers.
However, the reason that this was the beginning of tragedy was that such understanding of what theology is happens to confine theology within the padlock of modern knowledge and its vision of Wissenschaft, resulting in theology’s being divided into 1) philosophical theology as an analogue to philosophy, 2) historical theology as an analogue to history, 3) practical theology similar to professional skills akin to those necessary to train doctors and lawyers. However, ultimately this distinction was not inherent within theology itself, introducing awkward and foreign division that made it difficult for theological schools from then on to pursue genuine theological knowledge as wisdom. This educational paradigm centering around the training for pastors is called the clerical paradigm. Afterwards, such threefold division was further fragmented into the fourfold pattern of theology within theological education, consolidated into the following four: biblical theology, systematic theology, historical theology, and practical theology. Even so, since theological knowledge is integrative and practical at the same time, it seemed far away to restore the original vision of Paideia back to theological education.
At this point, practical theology made a turning point in the history of theological education, giving theological education ample opportunity to reflect on the nature of theological knowledge and the resultant paradigm, which is the vision of phronesis. As I already discussed in the first sharing, phronesis is knowledge gained by actually participating in the field (that is, by having relationships with God and with neighbor), and by seeking wisdom. While practical theology used to be regarded as second-class field even within theology, it now turned itself around and went through a sort of metamorphosis as a subfield within theology suggesting the future direction to which theology should be headed. Of course the division among theological subdisciplines and their architectural scholars are as stern as ever, yet such change within practical theology is stirring for a silent change to happen. As I speak with my professors, there is a movement for critically reflecting on the fourfold pattern, questioning how theological education could teach theology as integrative knowledge, and how it moves from professionally oriented education to wisdom-oriented education for all Christians. I for one as a member of the practical theological guild, will continually think out this question, trying to help theological education enhance itself.
LIKEELL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