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신학으로 가는 길

누구를 위한 공공신학을 해야 하는가-최경환의 공공신학으로 가는 길

 연구자로서 공부를 시작한 이후, 저는 제가 관심이 있고 좀 더 깊이 발을 담그고 싶은 학문적 논의에 대해서는 그 논의 전체를 조망하고 나름대로 큰 그림을 그려보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큰 그림을 잘 그리면 여러가지 유익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그 분야에서 중요한 용어를 규정하고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중요한 용어를 이해하지 못하면 논의를 제대로 따라갈 수가 없지요. 또한 그 분야의 주요한 논쟁을 살피고 어떤 주요한 인물들이 어떤 주장을 했는지를 이해하기에도 상당히 편리합니다. 많은 경우 주요한 논쟁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대략적으로 이해하면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파고 들 만한 부분이 어디인지도 보기가 더 쉽고, 더 나아가서 기존 자신의 연구 관심 분야와 새로 공부하는 논의 사이의 접점이 어디인지, 또 어떤 지점에서 자신이 연구자로서 기여할 수 있는지를 짚어내기도 훨씬 용이해집니다.

이런 작업을 하는데 필수적인 도구가 바로 그 분야를 잘 소개하는 개론서입니다. 그래서 저는 각 분야마다 되도록 반복해서 읽으면 좋을 개론서 하나씩을 두려고 하는 편입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조망을 하기 위해서 메노나이트 계열의 사회학자인 도널드 크레이빌의 [예수가 바라본 하나님 나라(the upside down Kingdom)]는 이제 두번째 읽고 있는데, 신구약 중간사(intertestamental history)같은 중요한 주제를 내러티브 형식으로 파악하기도 쉽고, 초대 교회의 삶의 자리를 예수의 삶의 자리와 연결해서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강의나 설교를 준비하는 데에도 유용합니다. 페미니스트 신학의 경우 백소영 교수의 [페미니즘과 기독교의 맥락들]을 통해서 페미니스트 신학을 조망하는데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이 책은 두 번 읽었고, 앞으로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읽을 계획입니다. 내러티브 신학을 알아가는 개론서로는 종합 시험 준비 당시 읽었던 조지 스트룹(George Stroup)의 [내러티브 신학의 장래(The Promise of Narrative Theolgy)]보다 좋은 책을 찾기가 어렵더라구요. 그래서 그 책을 읽고 있습니다. 실천 신학 개론서의 경우 저명한 영국의 실천 신학자인 일레인 그래함(Elaine Graham)의 [변혁하는 실천(Transforming Practice)]을 교과서로 삼고 반복적으로 읽고 있지요. 앞으로도 이런 개론서 리스트는 늘어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늘 소개할 최경환의 [공공신학으로 가는 길]은 공공신학 분야의 개론서로 리스트에 추가되지 않을까 합니다. 이 책은 단지 공공 신학이라는 분야의 주요한 논쟁에 대한 소개와 조망을 넘어서, 세계화나 포스트 모더니즘처럼 변화하는 상황의 지표들 앞에서 공공 신학이 어떻게 진화하고 발전하고 있는지를 예측해 볼 수 있는 여러가지 통찰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책의 전체 구조를 짜는데 있어서 저자인 최경환 선생은 2011년 독일의 밤베르크 대학에 자리한 공공신학을 위한 본회퍼 센터(Dietrich Bonhoeffer Center for Public Theology)에서 개최한 공공신학 컨퍼런스에서 발표된 논문들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있습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남아공의 공공신학자 더키 스미트(Dirkie J. Smit)가 공공 신학의 여섯 가지 흐름을 개론적으로 묘사하는 것을 실마리 삼아서 스미트의 논의를 좀 더 자세히 발전시키는 차원에서 논의를 펼쳐내고 있는데요. 그 여섯가지 흐름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벌거벗은 공론장에서의 신학(Theology in the Naked Public Square)

2) 공적 담론으로서의 신학(Theology as Public Discourse)

3) 신학과 공론장(Theology and Public Square)

4) 신학과 공적 투쟁(Theoloy and Public Struggles)

5) 신학과 글로벌 세계 속의 공적인 삶(Theology and Public Life in a Global World)

6) 신학과 종교적인 것의 공적 귀환(Theology and the Public Return of the Religious)

그러므로 이 책은 논쟁적(polemical) 이기보다는 묘사적(descriptive)입니다. 말하자면, 저자가 생각하는 어떤 특정한 주장을 펼치기 위해서 책 전체의 논지를 일관된 흐름으로 끌고가면서 증거를 제시하고 저자의 주장에 신빙성을 실어주는 방식으로 쓰여지는 대신, 좀 더 묘사적으로 스미트가 말한 공공신학으로 가는 여섯 가지 길이 어떻게 지금까지 공공신학의 흐름을 이끌어 왔는지, 각각의 흐름에 속한 학자들이 어떤 논쟁을 펼쳐 왔고 앞으로 펼쳐 갈지를 설명하고 관찰하는 방식으로 쓰여져 있습니다. 저자인 최경환 선생은 책의 기획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 책의 기획은 스미트가 제시한 기본 틀에 이론적인 설명과 역사적인 사례를 덧붙여 훨씬 더 구체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공공신학을 보여주려는 시도에서 시작했다” (전자책 25쪽).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저자의 뚜렷한 주장이 전혀 드러나지 않고 저자가 단지 객관적인 안내자의 역할만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최경환 선생은 자신이 책을 쓴 목적, 즉 자신이 이런 묘사적인 설명을 마친 후에 정말 하고 싶은 얘기가 무엇인지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본서의 목적은 단지 공공신학의 전체적인 지형도를 보여주고, 큰 흐름을 소개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나는 다양한 공공신학의 흐름 속에서 오늘날 우리에게 꼭 필요한 공공신학의 방향과 지향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공공신학의 지향점은 ‘누구를 위한 어떤 공공신학이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나는 다양한 공공신학을 소개하면서도 어떤 공공신학이 시대의 요청에 부응하는 공공신학일지를 계속 고민했다… 불편부당한 중립성을 고수하기보다는 언제나 약자 편에 서서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돌보시고 그들의 신음 소리를 들으셨던 하나님의 편애하는 사랑을 따라가는 것이 공공신학의 최종 지향점이어야 한다”(전자책 29쪽)

저자의 이런 논지에 서평자는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공공신학이 하나님께서 서 계신 곳,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자들과 함께 하는 신학이라면, 저자가 자신의 주장 대신 던지는 질문인 ‘누구를 위한 어떤 공공신학이어야 하는가?’는 이 책이 말하는 공공신학으로 가는 길이 어디인지를 묻는 독자들에게 유용한 나침반을 제공합니다. 특별히 이 책의 마지막 장은 공공신학의 여섯가지 흐름에 대한 묘사를 모두 살펴본 독자들이 저자의 스탠스(stance)를 파악하는데 있어서 뿐만 아니라, 저자가 서두에서 말하고 있는대로 전통적인 신학 분과들에 기반을 두기보다는 학제간 대화를 통해서 발전해 왔던 경향이 있는 공공신학이 점점 더 기존 신학분과들과 대화의 장을 넓혀 가면서 스스로를 어떻게 포지셔닝(positioning)하는지를 엿보기에도 유용한 장입니다. 저자는 마지막 장에서 기존의 공공 신학이 존 롤스로 대변되는 정치적 자유주의를 따라서 “공적인 삶 속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갈등과 논쟁 상황을 피하고 어떻게 하면 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는(전자책 229쪽) 번역(translation) 모델이나, 혹은 기독교의 독특성을 여전히 강조하면서도 공적인 장에서 기독교가 가진 목소리를 소통하려는, 알라스데어 매킨타이어의 공동체주의 철학(communitarian philosophy)에서 영감을 얻은 공공신학의 모델인 대화(conversation) 모델 대신, 루크 브레더톤(Luke Bretherton)이 제시하는 환대 모델(hospitality model)이 기독교 공공신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임을 구체적으로 제시합니다.

기독교가 말하는 환대는 무엇보다 연약한 이들을 최우선으로 돌보는 것을 중요시한다. 고대 사회의 식탁 교제는 사람들의 평등한 가치와 존엄성을 인정하는 중요한 방식이었는데,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은 손님을 초대해서 식사 나누기를 즐겼다. 그리고 그 환대의 식사는 단지 가족이나 친척에 국한되지 않았고, “신세를 갚을 수 없는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에게 베푸는 것이 핵심이었다” (전자책 230쪽)

무엇보다 저자의 이런 주장이 더욱 설득력을 얻을 수 있는 까닭은, 하나님이 과연 어떠한 분이신가를 이런 공공신학이 공적 영역에서, 그리고 공론장에서 아주 잘 드러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타자를 맞아들이기 위해 자신의 공간을 내어주고, 자리를 비워주는 것, 이것이야말로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희생적 사랑이라 할 수 있다” (전자책 234쪽)

이런 견지에서 스미트의 여섯가지 흐름을 살핀다면 공공신학의 과거를 점검하고, 현재를 조망하며, 미래를 예측하는데 아주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서평에서는 그 여섯가지 흐름을 요약해서 설명하는 대신 (그 부분은 책을 직접 읽어보신다면 아마 잘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서평의 목적은 사람들에게 책 내용을 요약해주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로 하여금 실제 책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도록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서평자가 큰 도움을 받았던 지점을 몇가지 꼽아본다면, 1) 공공 신학을 위한 인간 형성이라는 차원에서 최경환 선생이 인용하는 파커 팔머의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이 말하는 마음의 습관을 키우는 일이 얼마나 시급한지, 2) 내러티브 신학의 두가지 학파인 예일 학파와 시카고 학파가 공공 신학에서 어떻게 맞붙는지, 그리고 나이젤 비거(Nigel Biggar)라는 걸출한 영국의 공공신학자가 어떻게 그런 갈등을 중재하고자 하는지, 그리고 3) 해방신학자들이 코넬 웨스트(Cornel West)같은 학자들의 비판에 직면해서 기존 해방 신학의 주요한 테제들인 정치적 해방과 경제적 자유를 어떻게 공공신학이라는 흐름 속에서 이해하고자 하는지, 이 세가지가 상당히 유익했습니다.

우선, 저자는 기독교 교육 학자이자 실천 신학자로서, 공공신학의 여러 분야들 중에서도 공공신학을 위한 시민 형성(혹은 인간 형성)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경환 선생이 언급하는 파커 팔머의 ‘마음의 습관’은 그런 면에서 상당한 도움을 줍니다.

어떤 민주주의든 그것이 살아남는데 근간이 되는 ‘마음의 습관’을 키워야 합니다. 제가 ‘창조적으로 긴장을 끌어안기’라고 부른 마음의 습관 말입니다. 우리 안의 차이를 생명을 불러 일으키는 방향으로 끌어안는 법을 배울 때 갈등이 민주주의의 적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엔진으로서 보다 나은 사회의 가능성으로 우리를 이끌어 간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전자책 70쪽)

이런 마음의 습관의 구체적인 내용으로 팔머는 크게 두가지를 말합니다. 그것은 뻔뻔함과 겸손함입니다. “뻔뻔스러움이란 나에게 표출할 의견이 있고 그것을 발언할 권리가 있음을 아는 것이다. 겸손함이란 내가 아는 진리가 언제나 부분적이고 전혀 진리가 아닐 수도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전자책 74쪽) 서평자에게 특히나 흥미로웠던 점은, 미국의 장로교 목회자인 팀 켈러(Tim Keller)가 팔머와 이 지점에서 공명한다는 것입니다. 켈러는 공적 신앙을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공적 신앙이란, 우리가 복음의 진리를 말할 때, 진정으로 마음에 담고 있는 것들을 공적으로 밝히는 일, 그것도 겸손과 다른 이들을 향한 존중을 가지고 그렇게 하는 것을 뜻합니다” (팀 켈러 블로그, 2013년 9월 27일). 켈러가 말하는 복음에 대한 신뢰에서 나오는 겸손은 스스로가 자신의 정체성 확립에 있어서 아무런 기여를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깊은 자각에서 비롯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복음을 통해서 전해진 특별 은총과, 세상에 널리 퍼진 일반 은총이 신자를 그렇게 만듭니다!) 이런 겸손은 타종교인이나 타인종, 타문화에 속한 사람들과 열린 마음으로 대화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기반한 정체성을 확신할수록 팔머가 말하는 뻔뻔함 또한 가지게 됩니다. 공적인 영역에서 기독교 복음이 할 말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대한 좀 더 자세한 논의는 10월말에 출간될 서평자의 책 [팀 켈러의 신학적 비전: 연결과 소통을 향하여]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두번째로 내러티브를 기반으로 하는 공공 신학에 관한 논의가 그동안 공동체와 기독교 전통을 중요시하는, 소위 스탠리 하우어와스나 한스 프라이로 대표되는 예일 학파를 한 축으로(특수성), 그리고 타분야와의 대화와 학제간 연구를 중요시하는, 데이비드 트레이시로 대표되는 시카고 학파를 한 축으로(보편성) 계속적으로 이어져 왔는데요. 이 둘 사이에 어떤 접점이 있을지 보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비거는 이 두 내러티브 신학의 특징을 잘 살리는 공공신학함이란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고, 그 점이 서평자에게 예일 학파와 시카고 학파를 어떻게 앞으로 서평자 자신의 연구에서 조화롭고도 창조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 그 실마리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한편, 최근에 나이젤 비거는 칼 바르트의 신학을 충실하게 계승하면서도 자연법이라든가 자연 은총을 강조하는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의 전통을 사용해 공공신학을 전개한다. 비거는 성서와 신학의 전통을 진지하게 고려하면서도 공론장에서 기독교 윤리를 실천할 수 있는 중도의 길을 찾는다. 그는 기독교 신학이 가지고 있는 전체 이야기 혹은 거대 서사를 그리스도인들이 충분하게 숙고하고 적절하게 해석하기만 한다면 윤리학에서 요구하는 보편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신학적 내러티브의 통전성(theological narrative integrity)을 이야기한다. 그는 이러한 통전성이 복음의 독특성으로부터 나온 구별성이라고 강조한다. (전자책 102쪽)

요는, 기독교 서사 자체가 단지 독특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이미 보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보편성을 공적 영역에서 설득력 있게 보여주면 된다는 것이 비거의 입장입니다. 서평자는 비거의 입장을 더 살펴볼 예정이며, 내러티브 공공신학에 대해서도 좀 더 살펴볼 계기를 얻을 수 있을 것 같고, 이런 부분은 서평자의 연구에도 큰 전환점을 마련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세번째로, 서평자의 또 다른 관심사인 해방신학 담론이 어떤 면에서 나이브한 부분이 있는지를 이 책을 통해서 보게 되었고, 더 나아가서 해방신학 담론이 그런 도전에 맞서서 어떻게 진화하고 발전하고 있는지를 보게 되었던 부분이 참 좋았습니다. 최경환 선생은 미국의 저명한 정치 철학자이자 대중 강연가인 코넬 웨스트(Cornel West)가 해방신학 담론의 한 부류인 흑인 신학에 가하는 비판을 인용합니다.

코넬 웨스트(Cornel West)는 신학자들이 공적 삶(특별히 경제적인 영역)에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할지 몰라 헤매고 있다고 말하면서 사회에 대한 기술적인 분석 없이는 예언자적 선포를 적절하게 수행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흑인신학에는 적절한 사회 이론이 부족하다고 말하면서 그 필요성을 역설한다. 흑인신학자들은 미국의 생산 시스템과 외교 정책 그리고 문화적 실천들과 관련해서 어떤 방식으로 억압을 당하고 있는지 정밀하게 분석하지 못했고, 이에 대한 사회 이론을 적절하게 활용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전자책 150쪽)

이상이 서평자가 이 책을 통해서 얻은 유익에 대한 설명이었고요. 비록 서평자가 딱히 이 책에서 아쉬움을 느낀 부분은 없긴 합니다만, 앞으로 최경환 선생이 낸시 프레이저(Nancy Fraser)의 지위 모델을 앞으로 어떻게 창조적인 공공신학함으로 발전시켜 나갈지는 상당히 기대가 되며, 서평자 또한 칭의 교리가 담지하는 실천이 인정 투쟁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서평자의 박사 논문에서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최경환 선생이 연구하는 것들을 앞으로도 자주 참고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국 기독교가 수적으로는 저물어가고 있는 가운데 이제서야 한국의 신학 담론에 공공신학에 관한 논의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은 서평자 개인으로서는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좀 더 한국 교회가 성장세를 달리고 있을 때 공적 영역에서 책임 있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기독교 복음을 살아내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더라면 훨씬 더 교회의 공적 제자도가 잘 나타날 수 있었지 않을까, 그랬다면 교회 전체적으로도 공적 제자도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더 활성화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만, 지금이라도 공공 신학이 한국의 신학 담론 속에서 점점 더 주목을 받고 있다는 점은 일단은 고무적입니다. 바라기는, 앞으로도 한국 기독교라는 배경 속에서 공공신학함이란 어떤 것인지를 고민하는 논문과 책들이 더 많이 나오기를 기대하면서, 이 책의 서평을 마치고자 합니다.

서평 쓰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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