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PE (Clinical Pastoral Education-임상 목회 교육)과 신학 교육
안녕하세요 여러분, 서평 쓰는 남자입니다. 벌써 8월도 거의 다 끝나갑니다. 저는 지난 6월 20일부터 텍사스 주의 샌안토니오 지역에 위치한 재향 군인 병원(South Texas Veterans Affairs Healthcare System)에서 원목(chaplain) 교육생으로 일하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제 교육생으로 산 지 2개월이 약간 넘어가는데, 여러분들과 그동안 제가 배우고 깨달은 것을 좀 나누고 싶어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제가 오늘 여러분들과 나누고자 하는 얘기는 신학교 교육 과정 안에 ‘대화 연습’과 ‘다른 이들의 말에 경청하는 연습’을 포함시키는 것이 정말 필요하다는 것이며, 제가 현재 교육생으로 참여하고 있는 CPE(Clinical Pastoral Education: 임상 목회 교육)가 그런 면에서 제가 이제껏 배웠던 신학교 공부들을 목회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통합하는 훈련을 하는데 굉장히 큰 도움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CPE 과정 중에 하는 Verbatim(환자 방문 기록)이 저에게 굉장히 큰 도움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목회를 위해서 훈련받는 모든 사람들에게 굉장히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따라서 제가 하고자 하는 얘기는 신학교의 교육 과정 안에 굳이 임상 목회 교육이 아니더라도 목회 실습에 참여하면서 겪는 여러가지 상황, 특히 교인들을 대하면서 겪었던 일들을 신학생들이 복기하고 적으면서 당시 대화나 만남의 순간 순간에 자신이 가졌던 생각, 느낌, 기억 등등을 되돌아보면서 거기에 대해서 스스로 반추해보고, 또한 그 대화나 만남의 순간에 핵심적인 주제가 되는 이슈에 대한 신학적 관점을 개발하고, 거기에 대해서 자기 나름대로의 해결책이나 대안을 개발하도록 이끄는 훈련(즉 CPE 훈련과 유사한 훈련을 통해서)이 목회자 후보생으로 하여금 말하는 법 만큼이나 듣는 법에 대해서 (즉 자기 자신을 아는 만큼이나 다른 이들의 관심사를 들어주고 이해하는 일에 대해서도) 배우게 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일단 제가 원목 교육을 받고 있는 프로그램인 CPE(Clinical Pastoral Education: 임상 목회 교육)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CPE는 19-20세기 미국의 목회자이자 병원 원목이었던 안톤 보이슨(Anton Boisen)이 자신이 매사추세츠 주 우스터 주립 병원에서 원목으로 일하면서 신학생들이 병원에서 환자들을 방문하고 상담하는 일을 통해서 목회 전반에 유용한 관점을 얻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개발한 훈련 프로그램이며, 행동-반성-행동(action-reflection-action) 모델을 따라서 신학생들로 하여금 병원에서 훈련을 받으면서 환자를 방문할 때 자신이 느꼈던 점, 생각했던 점들, 행동하고 말했던 것들(1단계: 행동)에 대해서 환자 방문 기록(verbatim)이라는 리포트를 써서 복기하면서 다시 반추하고 반성하도록(2단계: 반성) 이끌며, 그런 반추와 반성의 과정을 통해서 깨달은 것들을 다시 자신의 말이나 태도, 생각, 느낌, 행동에 반영하도록 (3단계: 행동)합니다. 본격적으로 병원 원목으로 활동하고 싶은 신학생의 경우 이런 임상 목회 교육은 1년간 풀타임으로 일해야 획득할 수 있는 4학점을 이수하도록 되어 있고, 많은 신학교들에서 목회자가 되기 위한 필수 과정이라고 볼 수 있는 목회학 석사(M.Div) 과정의 필수 과정으로 임상 목회 교육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아직 이런 훈련을 받은지 2개월 밖에 되지 않았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이런 훈련을 통해서 상대방이 말하는 바에 귀를 기울이고 듣는 훈련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병원의 환자 방문은 상당히 짧은 시간 안에 1회성으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렇게 짧은 기간 동안 제대로 된 목회적 만남이 가능하려면 환자가 말하는 것들에 잘 귀를 기울여서 한마디 한마디를 허투루 듣지 않고 좋은 질문, 환자의 삶의 이야기를 이끌어낼 수 있는 질문을 하는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CPE가 이런 면에서 신학생들에게 좋은 훈련이 될 수 있는 까닭은 환자 방문 기록 리포트를 작성해서 단지 교수에게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같은 해에 훈련을 시작한 다른 동료들 앞에서 리포트를 발표하고, 그 리포트를 놓고 교수 뿐만 아니라 동료들도 계속해서 어떤 순간에 어떤 점을 느꼈는지,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각각의 생각이나 성찰에 대해서 좀 더 깊이 파고들어서 생각할 수 있는, 일종의 공동체적 듣기 훈련을 시켜주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이제까지 환자 방문 기록을 2번 밖에 쓰지 않았지만 (물론 환자 방문을 2번 밖에 안한 것은 아닙니다. 매일 방문하는 환자를 7-10명 정도라고 볼 때, 지난 2달 동안 최소 420명 최대 600명의 환자를 방문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환자 방문 기록을 쓰고 저의 동료들과 나누면서 제가 환자가 하는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환자가 자신의 아픔에 대해서 나눌 때, 그 아픔이 어떤 것인지, 어떤 면에서 그게 환자 개인에게 아픔이었는지, 또 그게 환자 개인의 삶의 역사에서 어떤 의미인지를 파악할 수 있는 좋은 질문을 어떻게 하는지, 또 그 질문을 하면서 어떻게 환자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정말 많이 배웠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저 자신에 대해서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왜냐하면 환자를 만나면서 제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어떤 면에서 환자의 삶의 이야기가 나의 삶의 이야기와 공명했는지, 내가 어떤 면에서 환자의 삶에 공감할 수 있었는지, 혹은 공감할 수 없었는지, 그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적어 내려가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좀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매 학점을 이수하기 위해서 최소 3-4번의 환자 방문 기록을 적어서 내야 하고, 또 동료들 앞에서 나 자신에 대해서 함께 생각하고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앞으로 1년이라는 기간 동안 이런 훈련을 최소 12번 최대 16번을 하게 됩니다. 지금 딱 2번 밖에 이런 훈련을 하지 않았음에도 제가 사람들의 말을 듣고 캐치하는 훈련과 저 자신을 돌아보는 훈련을 하는데 큰 도움을 받았다면, 앞으로 남은 10개월의 기간 동안 제가 누리게 될 유익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는게 지금까지 CPE를 하면서 제가 배우고 깨달은 점입니다.
이 시점에서 저는 왜 제가 신학교를 다녔을 때에는 이런 훈련에 대해서 들어본 적도 없었는지를 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다녔던 고든 콘웰 신학교의 목회학 석사(M.Div) 과정 또한 목회 실습 훈련 과정을 필수적으로 요구합니다. 멘토 목회 실습(Mentored Ministry)라고 불리는 고든 콘웰 신학교의 목회 실습 훈련 과정은 목회학 석사 과정에 있는 학생들에게 지역 교회를 섬기면서 그 지역 교회의 담임 목회자와 멘토링 관계를 맺도록 하고, 그런 관계를 통해서 목회 현장에서 배워야 할 점들을 배울 수 있도록 합니다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현직 목회자들이 신학생들에게 어떻게 멘토링을 제공해야 하는지를 전혀 알지 못할 뿐 아니라, 신학생들 또한 자신들이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거의 개념이 없는 상태에서 멘토 목회 실습에 참여하기 때문에 제 경험으로는 많은 경우 기대한 만큼 유익을 누리지 못했던 경우가 많았습니다. 고든 콘웰 신학교의 경우 모든 목회학 석사 후보생들에게 입학 첫학기부터 지역 교회를 섬기게 하고, 한 학기 동안 지역 교회를 섬기고 나면 1학점을 이수하게 합니다. 목회학 석사 졸업을 위해서 학생들이 멘토 목회 실습을 이수해야 하는 학점은 6학점입니다. 그 말은 목회학 석사 3년 과정 내내 지역 교회를 섬겨야 한다는 말이며, 그렇게 공부를 하면서 동시에 멘토 목회 실습을 받고 나면 어느 정도 목회에 대한 감각이 생길 것이라는게 아마 학교에서 이런 교육 과정을 도입한 이유일 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멘토 목회 실습 과정은 저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신학생들에게 그냥 교회에 가서 하라는 일 하고, 부서 일 맡아서 한 이후에 별 문제 없으면 멘토로 섬기는 담임 목회자 분이 합격 혹은 불합격 사인을 해주는, 굉장히 통과 의례적인 과정이었을 뿐, 멘토로 섬기는 목회자 분들이나, 멘티로 일하는 신학생들이나,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어떤 점에 집중해서 사역해야 하는지, 왜 목회자 후보생이 자신을 아는 것이 중요한지, 왜 경청하는 훈련이 목회 사역에 중요한지,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모든 경험들을 어떻게 하면 신학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지 스스로 고민하는 가운데 그 과정 속에서 목회자 후보생이 어떤 것들을 배워야 하는지 확실히 인식하고 있는 목회자 분께서 도움을 주시는 그 모든 과정이 거의 전무했습니다.
어쩌면 제가 어느 정도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또 신학 공부를 꽤나 오래 했기 때문에 (이래뵈도 신학 공부 18년차입니다 ^^) 신학이 어떤 학문인지, 목회와 신학이 서로 어떻게 도움을 주고 받아야 하는지 어느 정도 나름의 관점이 잡힌 상황에서 CPE 훈련을 받게 되었기 때문에 이런 부분들이 중요하다는 것을 지금 보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좋은 멘토가 있었다면, 신학생들이 목회 실습 훈련을 할 때 그들로 하여금 어떤 면에 집중해야 하고, 어떤 면을 돌아봐야 하고, 어떤 면을 개발해야 하는지를 가이드해줄 좋은 멘토가 있었다면 제가 목회와 신학의 관계를 이해하고, 저 자신을 돌아보는 일의 중요성을 알게 되고, 또 통합적인 신학적 관점을 개발하는 것의 중요성을 알게 되는데 이렇게까지 오래 걸리지는 않았을 거라는 점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가능하다면 모든 신학교들이 임상 목회 훈련에서 다루는 것들, 신학생들에게 요구하는 것들을 구체적으로 목회 실습 훈련 속에서 묻고 요구하는 프로그램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박사 전공은 기독교 교육입니다. 특별히 저는 신학교 교육에 관심이 많으며, 비록 현재는 진로를 병원 원목으로서 현장에서 섬기면서도 연구를 계속해나가는 방향으로 잡긴 했지만, 여전히 신학생들을 어떻게 교육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공부하고 고민하려고 합니다. CPE 훈련 과정은 그런 면에서 상당히 좋은 플랫폼을 제공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에서 얘기하기엔 너무 긴 얘기가 될 것 같아서 왜 일각의 복음주의 신학교들이 보이슨의 CPE 프로그램을 너무 자유주의적이라고 판단하게 되었는지, 또 그 결과 자신들의 목회학 석사 과정 교육 과정 안에 CPE 프로그램을 포함시키지 않게 되었는지에 대해서까지 다룰 수는 없습니다만, 저는 적어도 CPE 프로그램 안에서 다루는 것들은 목회자 후보생들이 일선 목회 현장에 나가기 전에 반드시 다루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어떻게 이런 부분들이 신학교 교육 과정에 좀 더 통합적으로 반영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고민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의 글은 여기서 마치고자 합니다. 하지만 제 CPE 훈련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기 때문에, 중요한 통찰을 발견할 때마다 나름대로 정리해서 여러분과 이 공간을 통해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드리고, 8월이 끝나기 전에 이창일 교수의 [수치: 인간과 괴물의 마음]이라는 책에 대한 서평으로 또 찾아 뵙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