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leheartedness

부족함(lack)채우려다가 여러 갈래로 나뉘어진 마음을 온전하게 하다—드그로우트(Chuck De Groat)의 wholeheartedness

척 드그로우트의 Wholeheartedness(번역하기가 애매해서 그냥 원제목을 적습니다)를 읽으면서 제 마음을 떠나지 않았던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유명한 시편 23편 1절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 구절은 나에게 아무 부족함이 없는 까닭은 하나님께서 나의 목자이시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유명한 고대 근동 성경 연구가인 케네스 베일리는 자신의 책 선한 목자(The Good Shepherd)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선한 목자 되신다는 이 비유가 초대 교회의 하나님 이해에서 가장 지배적이었다는 사실을 예리하게 짚어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후에 베일리의 책을 서평할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만, 제가 여기서 좀 더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목자가 되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부족함이 없을 것이라는 다윗의 선포입니다.

하지만 저는 신앙인이 된 이후에 한 번도 이 말씀이 참이라고 느끼고 산 적이 없었습니다. 적어도 최근까지는 말입니다. 우리의 삶은 우리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들을 채우기 위한 투쟁입니다. 먹을 것, 입을 것, 잘 곳과 같은 기본적인 육체적 필요뿐만 아니라, 우리는 인정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권력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또 지배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이리저리 분주하게 뛰어 다닙니다. 그런데 세상은 우리가 이런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의 필요나 부족을 잘 읽고 그들의 기분에 맞춰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열심히 일하고 최선을 다해야 인정 받을 수 있으며, 인정 받는 직업을 가지면 돈과 명예가 따라오며, 누가 더 뛰어나게, 탁월하게 일하느냐에 따라서 모든 필요가 채워지고 부족함을 메우는 것이 이 세상의 이치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삶을 살아가는 것은 상당히 우리를 지치게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런 지침은 기분 좋은 피곤함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사실 고갈에 가까운 상태인 경우가 더 많습니다. 왜냐고요? 우리는 우리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남들의 필요와 요구에 맞추는 삶을 살다가 정작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는 전혀 답하지 못하게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는 이렇게 자랍니다. 우리의 부모님은 “돈 많이 버는게 최고야! 돈 많이 버는 직업을 가지려고 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단지 부모님의 말씀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라,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어서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가지겠다고 합니다. 학교에 가면 어떨까요. 선생님들은 우리에게 “공부를 잘해서 성적이 잘 나오는게 최고야! 성적이 잘 나와야 사람 대접 받으면서 살 수 있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부모님을 기쁘게 하는 것에 더해서 선생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우리가 공부에 재능이 있다면 이 부분을 어렵지 않게 채울 수 있지만, 만약 공부에 재능이 없을 경우 우리는 스스로를 무가치한 존재로 여기기 시작합니다. 학교를 마치고 회사에 가면 어떻습니까? 마찬가지의 시나리오가 펼쳐집니다. 결혼을 해서 가정이 생기면 어떤가요? 배우자와 자녀들이 끊임없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요구합니다. 거기에 맞춰줘야 가정의 평화가 유지됩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다른 이들의 다양한 필요와 욕구를 채워야 우리의 필요와 욕구를 채울 있는 삶을 살아갑니다. 여기에는 시편 23편 1절의 말씀이 참이 여지가 거의 없습니다. 여호와께서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는 말씀은 점점 수수께끼처럼 들릴 뿐입니다.

하지만 이 책은 시편 23편 1절의 말씀이 어떤 의미에서 참인지를 저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다른 이들의 필요와 욕구를 채워야 나의 필요와 욕구를 채울 수 있는 삶의 가장 큰 폐해는 우리의 마음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진 채 살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살도록 지어지지 않았으며, 이런 삶이 반복되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고갈 뿐입니다. 그래서 드그로우트는 시인 David Whyte와 카톨릭 수사인 David Steindl-Rast의 대화를 인용하면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포인트를 짚어냅니다. 대화는 다음과 같습니다.

“Tell me about exhaustion,” Whyte says,

The old monk responds, “You know that the antidote to exhaustion is not necessarily rest?”

“The antidote to exhaustion is not necessarily rest?” Whyte asks, puzzled, perhaps like you and I might be. “What is it, then?”

His friend answers, “The antidote to exhaustion is wholeheartedness.” (118)

고갈의 반대는 휴식이 아닙니다. 아무리 쉰다고 해도 쉰 이후에 다시 저런 삶의 패턴으로 돌아간다면 그 쉼은 진정한 쉼이 되지 못합니다. 만약 쉬고 나서 다시 그런 삶을 계속해서 산다면 아무리 쉬어도, 아무리 돈이 많아도, 아무리 원하는 욕구를 모두 다 채워도 우리는 여전히 공허를 느끼며, 여전히 고갈된 채로 살아가게 될 겁니다. 오히려 우리는 우리의 나뉘어진 마음을 하나로 통합시켜야 합니다. 마음을 통합시키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을 통합시키려면 우리는 먼저 우리의 마음을 살피는 법을 배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우리의 마음이 우리가 느끼는 부족함을 어떻게 채우려고 해왔는지를 살펴야 시편 23편 1절이 우리의 삶에서 진정한 참인지를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드그로우트는 이렇게 우리의 마음을 살피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부족함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드그로우트는 마태복음에 나오는 예수의 산상수훈을 빌어 이렇게 설명합니다.

Becoming poor strips us of our inner divisions, including the spiritual masks we’ve worn in the exhausting holiness game we’ve been playing. This is critical, because we cling to our falseness (94)

(우리의) 가난함(=부족함)아는 것은 우리의 내적 분열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우리의 내적 분열은 우리를 지치게 만드는 거룩함을 향한 경기에서 우리가 쓰고 있던 영적인 사람인 하는 마스크 또한 포함한다. 이것이 중요한 까닭은, 우리가 우리의 거짓 자아에 붙어 있기 때문이다 (94)

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우리의 내적 가난함과 부족함을 인정하는게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그걸 인정하는 순간 우리의 자아상(self-image)이 무너져 내리기 때문입니다. 드그로우트가 말하는 거짓 자아(false self)는 사실 우리가 우리의 내적 가난함과 부족함, 즉 우리의 진짜 모습을 보기 싫어서 꾸며낸 자아이고, 이 자아를 통해서 우리는 한 편으로 우리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들을 채움 받지만, 또 한 편으로는 바로 이 자아 때문에 우리의 본질적 부족함과 가난함을 보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 드그로우트의 주장입니다. (저도 전적으로 거기에 동의하는 바이고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드그로우트는 우리의 내적 자아가 처한 본질적 가난과 부족함이라는 현실에 우리 자신이 연결되어야(=즉 우리가 그런 존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연결이 어려운 까닭은, 우리가 그렇게 할 때 마치 이제까지 우리가 열심히 쌓아왔던 우리 자신, 열심히 노력했던 우리 자신이 사라지는 것처럼 느끼기 때문인데, 만약 우리가 그렇게 할 때 우리의 나뉘어졌던 마음이 하나로 통합될 만한 존재와의 연결이 일어난다면 어떨까요? 만약 그 존재가 우리의 모든 필요와 부족함을 채워주는 존재라면, 더더군다나 그 존재와의 연결을 통해서 우리는 더 이상 여기저기를 쉼없이 뛰어 다니면서 사람들의 인정을 구할 필요가 없어질 뿐만 아니라,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을 우리의 필요와 부족함을 채우는 대상으로 삼지 않고, 그저 사랑하고 받아주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떨까요?

드그로우트는 이것이 바로 wholeheartedness의 길(the way of wholeheartedness)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시편 23편 1절은 바로 정확히 그런 실재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본질적 가난함과 부족함을 인정하지 못하게 만드는 그 모든 거짓된 자아를 벗어나서 우리가 처절하게 가난하고 부족한 존재임을 인정한다면, 그 순간 우리 스스로와의 연결이 일어날 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온전히 하나로 통합시켜주는 분과도 연결되며, 마지막으로 브레네 브라운이 말했듯이 이렇게 우리가 우리 자신과 우리를 만드신 분과 연결될 때 이웃과도 연결됩니다. 더 이상 이웃을 통해서 우리의 필요를 채우지 않아도 될 뿐만 아니라, 우리의 내적인 부족함과 가난함을 인정하는 순간, 다른 이들 또한 우리와 똑같이 부족하고 가난한 존재임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드그로우트가 말하는 wholeheartedness의 길입니다. 구독자 여러분들도, 저도 우리 모두 이 길을 걸어가는 것이, 시편 23편 1절의 실재를 사는 것이 바로 우리가 신앙을 가지는 본질적인 목적이자 이유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서평 쓰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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